WP "이탈리아 상황

모든 이에게 시사점"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가 위태로운 순간에 놓였다. 하지만 전 세계는 그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는지 모른다. 워싱턴포스트의 경제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새뮤얼슨은 25일 "코로나19에 이은 두 번째 큰 위협이 보이지 않는 먼 곳에 도사리고 있다. 바로 글로벌 부채 위기로, 유럽이 진앙지"라며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의 치명적 결과에 기진맥진한 전 세계 경제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에서 수천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기업들은 수조달러의 손실을 내고 있다. 확실한 건 또 다른 부채 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침체를 더 오랜, 더 깊은 위기로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25일(현지시간) MSC 소속 판타지아 크루즈선이 이탈리아 제노바항에 정박했다. 이탈리아는 경제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서서히 봉쇄와 격리 정책을 풀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유럽은 첫 번째 국가부채 위기에 빠져 허우적댔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아일랜드 등 유럽연합(EU)에서 가장 취약한 회원국들은 거대한 국가부채에 대한 디폴트를 피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지속적인 재정적자로 더욱 다루기 힘든 부채위기였다.

당시 위기는 그리스의 부채를 재조정(감축)하기로 합의하면서 해소됐다. 유럽중앙은행(ECB) 당시 총재였던 마리오 드라기는 2012년 7월 "유럽 국가들이 디폴트에 빠지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흥정은 간명했다. 과도하게 빌린 국가들은 ECB로부터 부채 경감을 받았다. 사실상 위기 국가의 국채를 보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빌리는 국가들은 적자를 줄여 ECB의 신용에 덜 의존하게 될 것이었다. 당분간 그같은 흥정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투자자 신뢰가 높아졌고 금융 리스크는 하락했다. 새뮤얼슨은 "하지만 그 흥정은 사실 허술했다. 안정적 경제성장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로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전제"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 대다수 국가들은 깊은 경기침체에 빠졌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최신 분석에 따르면 올해 독일 국내총생산(GDP)은 8%, 프랑스는 10%, 스페인은 15%, 이탈리아는 18% 위축될 전망이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급락했고, 재정적자 폭은 커지고 있다.

재정적자는 정부가 걷어들이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다는 것이다. 정부부채는 과거의 모든 재정적자가 누적된 것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적자와 부채가 상당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은 GDP 1% 규모의 재정흑자를 냈지만 올해는 GDP 8% 적자로 반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의 경우 지난해 GDP 3% 적자에서 올해 10% 적자로, 이탈리아는 지난해 GDP 1.6% 적자에서 올해 15% 적자로 늘어날 전망이다.

경제는 역성장하고 적자는 늘어나는 상황은 자동적으로 부채 부담을 높인다. 캐피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올해 말 독일의 정부부채는 GDP의 73%, 프랑스는 120%, 이탈리아는 180%, 그리스는 222%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지속가능할까. 종종 제기되는 질문이지만 곧바로 답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지속가능'의 정확한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시장, 즉 투자자나 트레이더들이 자발적으로 계속 빌려주는 한 부채는 지속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만기가 도래한 부채가 새로운 부채로 차환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 국가별, 상황별로 다양한 답이 나온다.

저금리에 과거부채를 제때 상환한 기록, 낮은 인플레이션 등 많은 요소에 기반해, 일부 국가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다. 독일의 국가부채 비율이 오르고 있지만, 독일이 디폴트에 빠질 것이라 여기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반면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벼랑 끝으로 다가서고 있다.

구제금융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탈리아는 유로존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빚이 많은 취약국가들을 함께 위기의 늪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탈리아는 독일과 프랑스에 이은 유로존 3대 경제국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유럽에서 구제금융을 조직하는 건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기업연구소(AEI) 이코노미스트 데스먼드 래크만은 "구제금융 액수가 수조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일 것인 데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자국 정부의 이탈리아 구제금융 참여를 막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독일 헌재는 ECB의 양적완화 정책인 '공공채권매입프로그램'(PSPP)에 대해 이달 초 일부 위헌으로 판단한 바 있다. 만약 독일이 이탈리아 구하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들도 머뭇거릴 것은 불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새뮤얼슨은 "현대사회의 정치적 상부구조는 대다수 국민에게 괜찮은 수준의 경제적 삶을 제공한다는 경제적 토대에 의존한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각종 단점들을 끊임없이 투덜대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며 "하지만 사실이라고 가정한 게 진짜 사실일까. 이런 기본적 경제안정을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머리털이 쭈뼛 곤두서는 오싹한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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