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정신대’를 위한 모금에 ‘위안부’ 피해자를 이용했다는 이용수 할머니 주장은 명백한 오해다. 할머니가 말하는 정신대란 근로정신대를 말한다. 일본군 성노예를 강요당한 ‘위안부’ 피해자가 아닌, 강제징용으로 노동력을 수탈당한 경우다. 정대협이란 이름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근로정신대 피해자 지원단체를 만들어 놓고 위안부 피해자인 자신을 이용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대협은 1990년 출범 초기부터 일관되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활동해온 단체다. 정대협이 단체명에 ‘위안부’ 대신 ‘정신대’를 넣은 이유는 당시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정대협, 일관되게 ‘위안부’ 위한 활동

1930년대 일본군은 ‘위안소’ 제도를 도입해 식민지와 점령지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갔다. 한국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실태조사로 확인된 바에 따르면, 피해자 대다수를 근로정신대로 속여 끌고가거나, 정신대로 공장에서 일하다가 위안소로 끌려간 경우도 있었다. 어떤 경우도 위안소로 간다며 끌고간 경우는 없었다. 지금은 ‘정신대’와 ‘위안부’ 피해자를 구분하지만, 정대협 출범 당시인 1990년에는 ‘정신대’란 용어에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개념이 혼재돼 있었다.

이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시킨 윤정옥(95)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활동을 담은 1990년 1월 4일자 한겨레 기사 제목은 “‘정신대’ 원혼서린 발자취 취재기”였다. 윤 교수가 홀로 사비를 들여 각국을 누빈 것은 ‘위안부’ 증언을 들으려는 이유였다. 정대협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을 하기 전부터 일본에 일관되게 항의한 것도 ‘위안부’ 문제였다.

그러나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서 ‘위안부’라는 말을 꺼내기도 힘들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피해자 증언을 받기 위해 신고를 기다려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증언한 후 모든 언론이 떠들썩했지만, 두번째 증언은 몇달이 지나서야 나왔다. 할머니들조차 ‘위안부’를 기피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정대협이 출범 초기부터 일관되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활동해온 단체임을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는 없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또 “성노예라는 말이 너무 싫다”며 분노했다. 윤 교수의 글에 따르면 1991년 국제회의를 마친 후 ‘위안부’ 피해자에게 ‘일본군 성노예’라고 부를 것인지 물었다. 피해자들은 그 이름이 너무 끔찍하게 사실적이어서 싫다고 했다. 그래서 따옴표 속에 넣어 ‘위안부’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더 엄밀한 개념으로 ‘위안부’를 명명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1995년 여성폭력문제 특별보고관으로 ‘라디카 쿠마라스와미’씨를 임명하고 실태조사를 했다. 이듬해 유엔에 제출된 보고서는 “전시하 군대에 의해 또는 군대를 위해 성적 서비스를 하도록 강제당한 여성의 사례를 군 성노예제(military sexual slavery)의 관행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머릿글에 명시했다.

1998년 유엔인권위원회는 맥두걸씨를 특별보고관으로 임명해 ‘전시하 조직적 강간, 성노예제 및 그와 유사한 관행’이란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보고서는 ‘성노예를 포함한 반인도적 범죄는 다른 근거(예를 들면 조약)에 의해 없앨 수 없고, 공소시효와 관련된 적용도 면제돼 국제적 강행규정 위반 범죄로 소추할 수 있다’고 명시해 일본 책임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성노예’란 표현은 유엔인권위원회가 일본의 전쟁범죄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1990년 11월, 37개 여성단체의 결의로 탄생한 정대협은 전후 반세기 동안 침묵하고 있던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에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일깨우고, 가해사실과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정부에 범죄 인정을 포함한 법적 책임 이행을 촉구했다.

극우세력의 정대협 매도 우려스러워

이용수 할머니 문제제기 이후 정대협이 쌓아온 인권운동의 성과를 폄훼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극우세력들은 이틈을 타 ‘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역사왜곡까지 자행하고 있다.

회계처리에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으면 되고, 법적으로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책임을 물으면 된다. 활동가와 정대협은 구분해야 한다. 일제 강압에서 해방됐지만 유일하게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일본군 ‘위안부’의 명예를 회복하고 잘못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정대협의 소중한 성과를 훼손해서는 안된다.

장병호 기획특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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