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서 방역리더 … 힘이 있어야 평화정신 펼 수 있어

무역항로 많이 열어 해양으로 진출한 네덜란드 모델 참고해야

일본 승려 엔닌이 남긴 '입당구법순례행기'는 장보고대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담고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장은 한일관계사를 연구하다 한국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사료들을 보고 2003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주의·주장을 앞세우지 않고 사료에 바탕을 둔 실사구시 학풍으로 한일관계사, 나아가 중일관계사를 연구하며 평화의 기운을 찾아 확대하려는 그를 지난달 28일 한국해양재단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최명범 해양재단 사무총장과 함께 진행했다.


■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역할은

일본측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해 비판 반박하는 게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한 자료수집, 고지도수집 등을 해왔다. 올해는 일본의 해양정책을 다시 둘러보고, 그 안에서 일본의 독도에 대한 태도와 한국의 대응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종군위안부 문제도 함께 연구하고 있는데 최근엔 독도종합연구소에서 한일관계 전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센카쿠열도(조어도)에 대한 일본 태도와 중국·대만의 대응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다.

지난해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일본어로 된 위안부 자료집과 증언집을 낼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 일본에서 반응은

일본에서 나에 대해 좋지 않게 보는 사람 많았지만 2016년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의 일본어판 자료집을 냈다. 이후 나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자라는 것이다. 독도가 한국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료에 바탕을 두고 한다. 한국에서만 발표하고 책을 내면 일본 사람들은 모른다. 한국말을 모르니까. 변화는 2014년부터 시작됐다. 내가 SCI(과학논문인용색인)급 논문 두 편을 영어로 낸 후 미국 영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이메일 연락이 많이 왔다.

■ 일본어로 낸 위안부 관련 자료집은 무엇인가

지난해에 위안부관련 자료집을 일본어로 냈다. 해설까지 포함했다. 일본인 병사들의 증언에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다 속아서 왔다는 내용 있다. 일본어를 하는 조선위안부들이 몇 사람 있었다. 그들이 강제 연행 당했다, 속아서 왔다, 레스토랑 여급한다고 해서 왔는데 도착했더니 위안부 강요 당했다, 군대니까 도망가면 죽임 당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일본 병사들이 듣고 돌아와서 수기를 많이 썼다.

한국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를 모아서 했는데 일본 병사들 이야기와 경험담은 1960~70년대 많이 나왔다. 그런 것 중 뽑아서 일본어 책에 많이 담았다. 나를 욕하려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내 책들이 다 나오는 것이다. 그런 것으로도 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 독도가 한국의 고유한 영토라는 사실을 연구를 통해 밝혔는데, 핵심내용은

SCI논문에 일본측 주장을 반박했다. 일본 주장의 핵심은 1951년 8월 10일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 딘 러스크(Dean Rusk)가 '독도는 일본영토'라고 쓴 서한이다. (▶편집자 주. "독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암초로 한국의 영토로 취급받은 적이 없으며, 1905년 이래로 일본 시마네 현 오키섬의 관할 구역이었다.") 일본 외무성 사이트에 오래전부터 나와 있는 일본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비밀문서였고, 미국만의 견해였고, 미국은 그 이후 그 견해조차도 부인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기재하고 있다. 이런 것 인용해서 일본 주장을 반박했다. 딘 러스크가 그런 문서를 작성했지만 비밀문서였기 때문에 미국의 일부만 알고 있었고 국제사회에 공표하지도 않았고 한국에 보내온 것이다. 그에 반대해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평화선을 그은 것이다. 이게 현대적 부분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일본은 1905년까지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게 중요하다. 1905년 이전에는 한국이 독도를 우산도라는 이름 등으로 부르며 울릉도 옆에 있는 섬에 대해 계속 영유권 주장했다. 이것만으로도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게 분명하다.

■ 러스크 서한은 개인적 견해인가.

딘 러스크는 당시 국무부 차관보였다. 미국 정부가 독도는 일본영토라고 생각하면 장관 이름으로 보내야 한다. 당시 장관은 애치슨이었다. 그런데 차관도 아니고 차관보 이름으로 보냈다. 미국은 그런 것 많이 한다. 정부의 정식 입장 아니고, 비공식인데 이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상대 반응을 보려고 하는 문서 상당히 많다. 그러니까 비밀문서였다. 정확한 미국입장으로 보기 어렵다.

■ 일본은 근대민족국가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영토라고 주장하지 않나.

그렇게 하려면 1905년까지는 일본영토라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 모순적으로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그 주장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고유영토이자 1905년 국제법적으로 다시 한 번 확립시켰다고 이야기한다. '다시'라는 것은 이전에 확인했다는 것인데, 역사적으로 그런 적 없다. 이것은 팩트다.

근대 국제법은 사실상 서양 나라들이 영토를 뺏기 위해 만든 것인데, 국제법 이용해서 독도를 뺏어간 게 당시 일본의 입장이니까 충분히 반론 가능하다. 당시 국제적으로 어떤 나라와 사이에 있는 애매한 영토에 대해서는 상대방에게 이것 우리 영토로 하겠다는 말을 해야 했다. 그것을 일본은 어겼다. 국제법으로도 해양법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한국 정부는 1906년 독도가 일본영토가 됐다는 보고받고 울릉군에서 말이 안되는 이야기라고 반론을 냈다.

■ 일본이 계속 독도영유권 주장하는 이유는

독도를 진짜 뺏으려면 일본이 군사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나는 본다. 독도에 군사적으로 도발하면 센카쿠열도측이 또 허술하게 된다. 중국이 그것을 뺏어갈 것이다. 일본이 이런 국제관계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이 요구하는 이유는 독도를 얻게 되면 그다음 울릉도까지 넘볼 수 있다. 요즘은 영토적으로 얻는다기 보다 해양문제가 크다. 독도를 얻으면 12해리, 혹은 독도기점으로 하면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울릉도와 사이에서 선을 그을 수 있다. 그런 장기적 목표 갖고 있다.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면 국제사법재판소에 갈 수 있고. 그러면 일본에 상당히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변함없이 하고 있다. 일본 우파들은 한국이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 꺼냈을 때 일본은 독도문제를 꺼내 외교카드로 사용한다.

한국이 독도를 기점으로 배타적 경제수역 주장하는 것 방어하기 위한 수단도 되는데, 남북이 하나가 되면 일본이 그런 소리 거의 못 하게 될 것이다.

■ 독도에 관한 저서를 한국에서 네 권, 일본에서 한 권 냈다. 서점에서 다 사서 볼 수 있나.

옛날 것까지 하면 다섯권인데 한 권은 품절됐다. 네권은 서점에서 살 수 있다. 책 제목은 일본고지도에도 독도 없다(품절. 고지도 중심), 우리역사 독도, 대한민국 독도, 대한민국 독도교과서, 독도 1500년의 역사 등이다. 일본에서 낸 것은 독도-다케시마의 일한사. 한일관계 역사다. 독도라는 이름만있으면 일본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고 해서 출판사 의견 받아서 독도 이름쓰고 다케시마 썼다.

■ 독도 포함 한일관계사 연구 계속 하고 있는데, 한일갈등의 뿌리는 무엇인가.

1905년 일본이 독도를 사실상 가로챈 것이다. 그때 한국에 알리지도 않았다. 이런 부분을 일본이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은 독도를 영토문제로, 한국은 역사문제로 본다. 이 견해차이가 독도 문제를 풀기 어렵게 하는데, 영토문제로 봐도 독도는 한국영토다. 일본이 상당히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 과거 40년간 지배했던 독도에 대한 미련이 있고, 시마네현 사람들이 지금도 독도를 요구하고 있으니까. 또 하나, 유엔 해양법이 생겨서 200해리 싸움이 있고, 이 중심에 독도가 있다.

■ 1965년 한일협정에서 다루었는데

1965년에는 일본이 다른 한일관계 중시하면서 독도를 사실상 포기했다. 일본은 실용적 나라이기도 하니까. 그런 게 1965년 협상과정에서 많이 나온다. 그래서 1965년 이후엔 일본 정부에서 독도 이야기를 거의 안 했다. 그러나 1994년 유엔 해양법이 확정된다는 것 알게 된 일본은 1993년부터 정부가 나서서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공세를 하기 시작한다. 해양법으로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이라는 게 생기는 것 알고 1년전부터 독도문제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가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이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독도문제의 본질이다. 현대적 독도문제는 영토문제 이상으로 바다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독도 둘러싼 한일갈등을 해결할 방안은

하나의 방법론은 센카쿠열도에서 일본이 보여주고 있다. 센카쿠열도는 대만과 중국이 일본에 대해 대만 것이다, 중국 것이다 하며 엄청난 항의를 하고 있다. 여기서 일본은 대만에 대해서는 요구를 많이 수용했다. 미국의 요청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일본이 자유주의 진영인 대만과 싸우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측 수역으로 돼 있는 부분을 대만에 개방하며 조업을 해도 된다고 했다. 대만도 센카쿠열도에 대한 주권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기본입장일 뿐이지 일본에 대해 성토하던 게 사라졌다. 하지만 중국에는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일본 뒤에 미국이 있으니까.

■ 한국도 지소미아 문제 등 포함 한미일 관계 복잡한데

한국에 대만 사례 적용하는 것도 어려운 부분 있다. 센카쿠는 일본이 갖고 있고, 일본이 가해자니까 일본이 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독도는 피해자인 한국이 갖고 있고, 중간수역으로 돼 있지만 이 부분을 일본측에 더 많이 할애한다든가 하는 논의는 할 수 없다. 피해자인 한국이 일본에 양보하면 정권이 무너진다. 어렵다.

■ 어떤 해법이 있나.

먼저 해양 쪽에서 합의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한국이 피해자의 입장이니까 일본 입장을 받아들이면 국내적으로 상당한 분열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 지금도 한국은 국론이 여러 면에서 분열돼 있다. 위험한 발상이다. 한국입장에서는 해결 못 한다. 일본이 독도를 포기해야 한다.

■ 일본이 독도를 포기할 가능성은

1965년도에 사실상 독도를 포기한 게 일본이다. 그때 한일협정반대시위가 엄청나게 일어났다. 독도를 중심으로 한국이 상당히 불리한 협상을 맺으면 큰 일 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도쿄에 나가 있었던 이동원 외교부장관에게 전화로 지시한다. 협정서명하기 5일 전이다. 독도에 관해 한국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면 모든 회담을 중지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그래서 일본 정부가 양보하기 시작한다. 일본은 독도 하나로 한일관계 전체를 망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간 것이다.

그때 분쟁해결위한 교환공문을 교환한다. 이것은 하나의 조약이다. 한일기본조약 있고 한일협정 있고, 교환공문이 있다. 부속조약 정도로 보면 된다. 거기에 일본은 독도를 비롯한 한일간 분쟁이 있을 경우 라는 식으로 쓰려고 했는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국정부가 독도라는 이름을 삭제하고 일반적인 분쟁만 남겼다. 일본은 한국의 공세에 밀렸다. 대한민국 독도라는 책에도 그때 문서 다 실었다. 이게 1994년에 완전히 바뀌었다.

■ 장보고대사는 무역으로 한중일 3국의 평화를 열었다. 한중일 3국이 평화 공존을 위해 어떤 것에 힘써야 할까.

당시와 상황 바뀌었다. 장보고업적을 계승하려면 정신이다. 무역을 통해 평화지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장애가 있다. 경제적 이익만으로 평화가 오지 않고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이 있으니까. 미중경제전쟁은 미국도 경제적으로 손해지만 패권싸움이니까 한다. 경제를 희생시켜도 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국만 평화세력이다. 한국의 좋은 부분은 평화정신을 어디서든 이야기해야 한다. 코로나라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아무리 좋은 정신을 말해도 힘 없으며 안된다. 지금 코로나 방역에 대해서는 한국이 주도했다. 앞으로 백신을 누가 개발하느냐 이 문제가 국제적 경쟁이고 패권싸움인데 여기서 이겨야 평화를 지킬 주체가 될 수 있다. 한국은 군사력을 넘어서는 의료안보에서 지도적 역할을 해야 현대의 장보고 역할 할 수 있게 된다.

■ 한국이 해양국가가 되려면

해양정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육지를 중시한 나라이다 보니 해양정책이라고 해도 막혀있는 부분 많다. 중국도 대륙국가지만 남중국해 지배해서 태평양으로 나가려 한다. 미국은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도 태평양을 차지한다는 게 아니라 항로를 위주로, 더 많은 항로를 더 만드는 게 중요하다. 네덜란드가 그렇게 했고, 장보고도 그랬다. 장보고정신을 현대적으로 살리는 길은 항로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장보고 후예를 찾아서" 연재기사]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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