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더 큰 싸움 대비, 실탄 비축”

금융·경제 손실 감수하고 국가안보법 통과

중국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2002년 이후 처음이다. 1979년 미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중국의 핵심 테마는 언제나 경제개발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일자리 창출과 빈곤 구제에 우선순위를 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일 “경제성장보다 안정을 우선하겠다는 신호”라며 “코로나19 창궐이 방향 전환의 원인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근본적인 요소는 미국과의 갈등”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는 중국과 미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미리보기를 제공한다. 양국을 오가던 비행기는 멈춰섰고, 물류 흐름은 와해됐으며, 가치사슬은 끊어졌다. 선의와 협력은 사라졌고, 상호 비난전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자국민에게 ‘세계가 더 위험해질 것이므로 어려운 시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중국 정부 역시 경제정책의 실탄을 아껴두고 있다.

SCMP에 따르면 미국과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주요국의 경제·금융 부양책은 국내총생산(GDP)의 10% 를 넘었다. 또 이들 나라의 기준금리는 이미 제로 이하 수준이다. 하지만 중국은 1조위안(약 173조원) 국채, 1조6000억위안(약 277조원) 지방채를 사들이는 선에서 멈췄다. 둘을 합쳐봐야 중국 GDP의 2.6%에 불과하다. 또 중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7%다. 경제규모가 큰 주요국 중 가장 높다.

중국의 재정적자는 올해 GDP의 3.6%로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재정지출을 늘려서라기보다(국방지출 증가는 예외) 세금이나 수수료를 감면한 데 따른 것이다.

중국은 지방성과 각 시군 정부에 긴축을 요청하고 있다. 거대한 자산을 갖고 언제든 양적완화를 통해 지출을 늘릴 수 있는 중국 정부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주문을 내놓은 것.

경제의 많은 부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중국 정부가 왜 그리 자제심을 발휘하고 있는 걸까.

SCMP는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앞으로 닥칠 격변과 어려움을 대비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경제성장 대신 일자리 보호와 사회적 안정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배경에서 중국의 최고 국가권력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최근 홍콩에 대한 국가안보법을 통과시켰다. 중국은 이 법안이 미국을 자극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밀어붙였다.

홍콩은 중국의 관문이다. 국제자본시장이자 최대 규모 위안화 역외시장이다. 하지만 중국은 금융, 경제 전선에서 거래손실을 감수하려 한다. 대신 국가안보 전선을 강화하며 잠재적 이득을 노리고 있다.

SCMP는 “이 모든 상황은 중국이 미국과의 전면적인 디커플링 가능성을 놓고 대비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원치는 않지만 현실로 닥쳤을 때 우회하지 않고 정면 돌파한다는 의지”라고 전했다.

또 SCMP는 “새로운 냉전의 위협이 전 세계를 휘감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아직 전면 충돌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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