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예술인소셜유니온 운영위원

20대 국회 마지막 임시회의에서 예술인의 고용보험 가입을 특례화하는 ‘고용보장법’이 통과되었다. 2011년 예술인복지법 제정 당시에 예술인에 대한 근로자 의제를 누락한 탓에 적용하지 못한 고용보험을 ‘특례’라는 방식으로 도입한 것이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으로 제안된 지 3년, 새 예술정책TF를 통해 ‘강제가입+용역계약 범위로 확대’라는 방식으로 골자가 마련된 지 2년 만이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끝내 폐기

2년 동안 국회 상임위에 처박혀 있다가 폐기될 뻔한 법안이 특수고용 형태의 노동자들을 덜어낸 후에서야 볼품없이 통과되었다. 예술인 고용보험은 예술인에 대한 복지지원만 담은 반쪽짜리 예술인복지법에 활동보장이라는 내용을 보완한 것이다.

그러나 예술인들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를 침해하는 공권력에 대한 처벌규정을 담은 예술인권리보장법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결국 폐기된 이 법은 지난 정부의 블랙리스트 문제가 장기 지속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다. 이 역시 문 대통령의 공약이었지만 국회에 법안으로 제안된 지 1년 만에 슬그머니 버려졌다.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현장 예술인들은 진상조사 및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는데,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이에 대한 최소한의 후속조치였다. 여기서 핵심은 블랙리스트에 대한 처벌의 의미가 단순한 블랙리스트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화이트리스트에 대한 거부도 담겨 있다는 점이다.

예술인을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은 예술인의 창작활동에 대한 개입을 범죄화하는 것으로 명시된다. 그래서 개인 예술인 및 예술인단체들로 구성된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블랙리스트도 화이트리스트도 없는 세상’을 요구했다.

이번 고용보장법 통과로 예술인의 활동이 최소한의 고용보험 적용을 통해서 보장되어야 할 직업적 노동으로 인정됐다. 하지만 예술인 없는 예술지원 구조는 여전히 시혜적 상태로 존속한다.

특히 이미 처벌시효가 끝났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 실행자들이 복귀하는 것을 보면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다. 공무원들의 범죄행위가 행정상 부분적인 징계만으로 지나간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좌절의 이유가 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이 끝내 폐기된 사유 중 하나가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무원에 대한 처벌규정 때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블랙리스트 나온 정책환경 변화 없어

많은 사람들이 예술인 고용보험에 대해 특혜가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노동을 하면서도 고용보험 가입 대상에서 배제되어온 예술인에게는 오히려 너무 늦었다. 아직도 블랙리스트 이야기냐고 말한다. 그러나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전히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작동하고 있다는 징후는 차고 넘친다.

당장 코로나19 피해 대책이라고 내놓은 정책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예술인고용보험법이 실제 예술인들에게 적용되는 데는 구체적인 적용범위와 방법을 담은 시행령이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구조화된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종식시킬 최소한의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술인권리보장법이다. 예술인의 활동보장과 권리보장은 선후 관계로 나눠질 성질이 아니다. 지난 정부의 블랙리스트 정책 환경이 이 정부에서도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