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철 전남대 교수

2018년 식품소비행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 25.3%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로 사과를 꼽았다. 2019년 사과 생산량은 약 54만톤으로 국내 과일 가운데 생산량으로 보면 으뜸이다. 이 정도면 ‘국민 과일’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사과에는 비타민 무기성분 등 영양분이 풍부해서 ‘아침 사과는 보약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하나 버릴 데 없는 사과를 우리는 장기저장기술의 발달로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즐겨먹는다.

현재까지 완벽한 치료제 방제법 없어

그러나 최근 외국에서 침입한 과수화상병 때문에 사과·배 등의 과수산업이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이 병에 감염되면 과수의 잎과 줄기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타들어가다가 죽는다. 이런 증상 때문에 화상병(Fire Blight)이란 병명이 붙여졌다. 과수화상병에 감염된 과수는 뿌리째 뽑아 매몰해야 하기 때문에 그 피해가 매우 크다.

국내에서는 2015년 경기 안성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충북 제천 충주, 강원 원주 평창 등으로 확산됐다. 현재는 사과 주산지인 경북 안동 영주 문경 등을 위협하고 있다.

과수화상병은 1780년 미국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1980년대에는 이탈리아 스위스 노르웨이, 1990년대에는 스페인 호주 등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전세계의 식물병리학자들이 과수화상병 확산을 막고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완벽한 치료용 약제 및 방제법을 개발하지 못한 실정이다.

과수화상병을 치료하거나 혹은 확산방지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세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과수화상병의 병징이 발현되기 전에 감염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신속정확한 진단·확진법과 예찰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둘째 다양한 전염원인 중에서 주된 전염원의 구별과 인근 과수로의 전파기작을 연구해 밝히는 것이다. 셋째 감염 과수원의 폐원을 대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치료제와 방제법을 개발해야 한다.

과수화상병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은 정밀예찰과 적기방제 뿐이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올해부터 5년간 240억원을 투입해 과수화상병의 치료와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과수화상병 발생지역의 특성을 조사하고, 무병징 감염과수를 진단하는 정밀 진단·예찰기술과 발병 예측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병원균 전염기작을 구명하기 위한 연구로 병원균의 특성 구명, 식물체 이동경로와 감염기작, 유전체 분석과 병원성 발현기작 등을 추진 중이다. 과수화상병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해 길항미생물, 박테리오파지, 그리고 유도저항성 미생물과 물질 등을 이용하는 생물학적 방제기술, 작업도구 소독 등의 경종적 방제기술, 저항성 품종 개발, 종합방제체계 구축 등의 연구도 추진중이다. 이밖에 농림축산검역본부 육묘장 농업인단체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해 과수화상병 확산방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사과의 재래종인 능금을 재배했다. 고려 의종 때 쓰여진 ‘계림유사’에는 임금이라는 칭호가 능금의 어원이라고 나와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전문가 지혜 모을 때

또한 사과는 그 재배법이 조선시대에 쓰여진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 민족과 역사적 인연이 깊다. 사과를 포함해 과수산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과수화상병을 극복하고, 새로운 과수산업을 선도해나갈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전문가들의 지혜와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