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태영 경기 수원시장

한때 우리 국민들의 이민 희망국가 1순위는 미국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럽, 그것도 북유럽에 대한 선호가 높다. 교육과 복지 수준이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왜 북유럽이 복지국가의 전형이 되었을까?

영국의 대주교였던 윌리엄 템플이 1942년 출간한 그의 저서 ‘기독교인의 시민사회적 책임’에서 ‘독일은 전쟁국가, 영국은 복지국가’라는 말로 전후 영국의 진로를 제시하면서 ‘복지국가’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사회적 대타협 성공, 복지국가 이끌어

하지만 정작 복지국가의 핵심 정책인 사회보험은 독일이 먼저 시작했다. 1883 년에 의료보험, 다음해에는 산재보험, 이어 1889년에는 공적연금을 도입했다.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세계 최초로 사회보험을 도입한 이유는 그의 피가 따뜻해서가 아니다. 의료보험이 도입되기 20년 전인 1863년 독일에서는 세계 최초의 노동자 정당인 독일사회민주당(사민당)이 창당되었고 1877년 제국의회 선거에서 50만표를 넘게 얻었다. 비스마르크는 그 당시 참혹한 노동의 현실에서 사민당의 탄생이 어떤 사회적 파급을 가져올지 내다보았던 것이다.

그 이후 유럽의 대다수 나라가 사회보험을 도입했고 북유럽 국가들도 이런 변화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북유럽이 복지국가의 모델로 자리잡게 된 계기는 ‘사회적 대타협의 성공’ 때문이다.

1929년 미국은 대공황에 빠졌다. 기술발전에 의한 일자리 감소, 노동력의 기계 대체에 따른 과잉생산을 감당할 수요가 없었다. 미국의 경제위기는 유럽에도 전해졌고 북유럽 국가들은 이 위기를 사회적 대타협의 밑거름으로 활용했다. 사회적 대타협은 ‘개인의 일시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모두를 위한 복지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성과를 거두면서 노사의 협력과 상생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다. 지난 IMF 경제위기처럼 많은 국민을 궁지로 몰지 않고 난관을 넘어가는 유일한 길은 우리 사회에 걸맞은 사회적 대타협이다. 그동안 몇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한국노총이 참여하면 민주노총이 빠지는 식의 상황이 반복됐다.

위기는 기회다. 사회적 대타협의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노사간 대화 문화가 부족하고 개별노조의 경험뿐인 우리 상황에서는 지역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대타협은 패키지일 수밖에 없다. 임금동결과 고용유지가 그렇다. 임금을 올리면서 고용을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사회적 안전망을 더 촘촘하게 짜야 한다.

지역에서부터 대타협 가능성 높여야

이러한 실험을 수원에서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현재 지방정부의 권한으로는 언감생심이다. 노동 관련 권한은 고용노동부의 몫이고, 수원시는 노조설립신고증 발급 이외에 별다른 권한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작은 대화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큰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는 일도 의미있는 출발이 될 것이다. 지난 10년 비교적 탄탄하게 운영해온 노사민정협의회를 주춧돌로 삼을 생각이다. 수원뿐 아니라 전국 100여개의 지방정부에 ‘노사민정협의회’가 설치되어 있다. 지역에서 시작해 국가정책으로 자리잡은 수많은 정책이 있다. 게다가 우리는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K방역의 나라다. 표준을 만들어낸 역량으로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을 못할 건 무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