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원구성 합의 불발 왜?

강경파, 법사위 절충안 거부

여야의 21대 국회 원구성 합의 불발은 '예고된 참사'였다. 여야 양쪽의 주도권을 쥔 강경파가 법사위원장을 둘러싼 어떤 절충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당초 원구성 합의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강경파는 원구성 협상 초기부터 "무조건 법사위원장을 가져온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16년간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았던 관례를 무시한 강수였다. 협상 과정에서 △전반기 2년은 민주당, 후반기 2년은 통합당이 맡는 안 △전반기 2년을 여야가 나눠맡는 안 △법사위를 법제위와 사법위로 분리하는 안이 절충안으로 제시됐지만 민주당 강경파는 거부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29일 "우리는 후반기 2년이라도 (법사위원장을) 교대로 하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그마저도 안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강경파는 법사위원장을 4년 내내 맡겠다는 '원칙'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다만 협상 막판에 박병석 국회의장이 '전반기 2년은 민주당이 맡고, 후반기 2년은 차기대선 결과 집권당이 맡는 안'을 내놓자 이를 수용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말하는 '잠정합의안'이다. 민주당 강경파가 차기대선 승리를 자신했기 때문에 '잠정합의안'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이 주장하는 '잠정합의안'은 주 원내대표로선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주 원내대표는 "'너희가 다음 대선에서 이길 수 있으면 그때 가져가 봐'라는 비아냥으로 들려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통합당 강경파도 만만치 않았다. 협상 초기 민주당에서 '법사위원장을 제외한 7개 상임위원장 배분안'을 제안하자,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당내 과반을 넘는 초선의원들을 중심으로 "차라리 상임위원장 18석을 다 가져가라. 우리를 밟고 가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28일 여야 원내대표가 절충안을 협상했지만 이 절충안에 대해서도 강경파는 "받을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절충안으로 △법사위원장 후반기 2년을 차기대선 결과 집권당이 맡는 안 △후반기 2년을 여야가 번갈아 맡는 안이 거론된다는 사실이 28일 오후 이후 알려지자,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협상이 최종결렬되기 직전 내일신문과 통화가 이뤄진 영남권 재선의원은 "이건 절충이 아니라 항복"이라며 "법사위를 내주고 다른 걸(국정조사)를 받아온다면 주 원내대표는 진짜 사퇴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남권 초선의원은 "법사위원장을 나눠 맡더라도 통합당이 먼저하는 안이 아니라면 의원들이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주 원내대표가 다른 절충안을 갖고 오면 원내지도부에 대한 신임 여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영남권 초선의원 2명도 절충안을 비판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도 29일 의총에서 "앞으로 남은 1년 이후 우리가 정권을 스스로 창출한다는 신념에 불탄다면, 오히려 이것이 좋은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며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정치권내 대표적 협상파·합리파로 불리는 주 원내대표지만 당내 강경파의 분위기에 밀려 협상 결렬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 원내대표는 협상이 결렬된 뒤 '당내 의원들이 대부분 강경한 입장이냐'는 질문에 "그런 의견이 많았다"고 답했다.

여야 양쪽에서 강경파가 주도권을 쥔 사실이 확인된 이상, 향후 3차 추경처리와 공수처법 처리를 놓고도 여야간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절충안을 모색하는 대신 '독단처리'와 '발목잡기'로 맞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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