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할 전례가 없다"

무기력·자중지란은 '자멸'

중진 경륜·단일대오 필수

"군사독재 정권 이후로 처음이잖나. 참고할 전례가 없다."

21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이 29일 최종 결렬된 후 미래통합당 소속 한 중진의원이 한 말이다. 여당이 모든 상임위원회의 과반과 위원장을 차지한 초유의 상황에서 마땅한 대여 전략이 없다는 뜻이다.

통합당 의원들은 일단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다.

4선 김기현 의원은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회독재 쿠데타가 감행됐다" "자유민주주의가 사망선고를 당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는 한국 진보의 도덕적, 정신적 파탄에서 비롯되었으며, 다수 인민의 '총의'에 복종하도록 강제하는 틀은 전체주의와 동일하다"고 한 최장집 고려대 교수를 인용하며 "국회가 바로 서는 그날까지 저는 '6.29 의회독재 쿠데타' 의 부당함을 국민과 역사 앞에 알리고,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하는 뜻있는 국민과 함께 더욱 가열찬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협상론을 펴왔던 3선 장제원 의원은 '인내'를 화두로 던졌다.

장 의원은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협상론을 주장한 사람으로서 (최종결렬이) 무척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또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대학 등록금 반환 지원 추경안이 통과됐다는 언론보도를 인용하며 "민주당은 우리에겐 '폭거'를 국민에겐 '착한 정치'를 반복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서생의 문제의식을 상인정신으로 돌파해야 한다"며 "우리가 민주당에게 상임위 몇 개 적선하듯 던져줄 그 날을 위해 분루를 삼키고 오늘을 인내해야 한다. 세련되게 독해져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인식은 가혹하다.

한 영남 중진 의원은 "야당 의원들을 엄호해주고 직능·이익단체들과의 소통이 무기가 될 수 있는 상임위원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심각한 핸디캡"이라며 "우리가 상임위에서 아무리 옳은 얘기를 한들 국민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다른 재선 의원은 "초선 의원들이 걱정"이라며 "처음에는 열의를 갖고 정부여당을 비판하며 법안도 발의하겠지만 여당에 의해 번번이 좌절당하는 경험을 하다 보면 무기력증에 빠질 수 있다.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진 의원들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 당 지도부 관계자는 "상임위원장을 맡지 못한 3선 이상 의원들의 실망감이 클 것"이라며 "지금은 명분론으로 이를 감내하겠지만 당의 투쟁성과가 제때 나오지 못하면 적전분열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리되면 자멸"고 내다봤다.

통합당으로서는 단번에 정국을 뒤집을 뾰족수가 없는 만큼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까지 버텨내며 장내투쟁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수영 디아이덴티티 메시지전략연구소장은 "통합당으로서는 경험 많은 간사, 전문성 있는 초선 의원들의 협업이 유일한 무기"라며 "발목잡기가 불가능한 만큼 통합당 만의 내용을 어떻게 쌓아나가느냐가 숙제"라고 봤다. 최 소장은 "경제든 대북문제든 정부여당 정책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는 순간에 국민을 납득시킬 만한 대안을 던질 준비를 계속 해야 한다"며 "그 순간이 와도 '그것봐라' 하고 책임론만 던지면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봤던 민주당의 처지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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