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W "임금·혜택 줄이고, 노동자 권리 짓밟아 … 코로나19에 상황 바뀔 수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 최신호에 따르면 아마존은 지난 4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에밀리 커닝햄을 해고했다. 부활절 기간이 끝나기 전이었다. 아마존 인사담당자는 약간 다르게 말했다. 그는 "아마존과 커밍햄의 관계가 종료됐다"고 표현했다. 커밍햄은 자신의 회사 이메일 계정이 정지된 지 1시간 뒤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7년 동안 아마존 시애틀 본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인사담당자는 그의 일처리에 부족함이 있었다고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규정을 어겼다고 했다. 아마존에 따르면 그는 권유를 금지하는 회사 규정을 깼다.


15년 동안 아마존에 근무하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머렌 코스타 역시 커닝햄과 같은 날 같은 이유로 해고됐다. 그 둘은 아마존의 코로나19 안전규정에 이의를 제기했고, 다른 동료들에게 이에 동참하자고 촉구했다. 뉴욕시 창고에서 일하던 크리스 스몰스는 안전규정 미흡을 이유로 파업을 이끌다 해고됐다. 커밍햄과 코스타는 화이트칼라 동료들에게 '근로조건을 향상해 달라'며 파업에 돌입한 아마존 창고 노동자들을 지지해달라고 부탁했다. 커닝햄은 스몰스에 대한 회사측의 처우를 비판하는 이메일을 동료들에게 보냈다. 커닝햄은 이메일에서 "미국 법과 아마존 내규는 작업장 조건에 대한 노동자의 의사소통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마존은 성명서에서 "우리는 노동조건을 비판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한다. 하지만 모든 내부 규정에 대한 도전에 대해 덮어놓고 면책을 준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반면 커닝햄은 "오류를 발견하고 고치는 건 기술기업의 노동자가 해야 할 작업 중 일부"라며 "아마존이 노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매우 단순한 진리를 놓치게 된다"고 반박했다.

이같은 풍경은 아마존에 국한되지 않는다. 커닝햄이 인사담당자의 해고 전화를 받기 몇달 전, 구글은 4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해고했다. 이들은 구글이 미 국방부와 함께 일하는 것, 유튜브에서 부적절한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 등에 항의하며 이를 반대하기 위해 동료들을 조직하고 있었다. 구글은 데이터 보안 규정을 위반했기에 이들을 해고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를 맞아 방역과 치료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의료진들 역시 해고됐다. 워싱턴 주의 한 병원 응급실 의사는 페이스북에 안전상 우려되는 사항을 올렸다가 즉각 해고됐다. 그는 현재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중이다.

의사나 구글·아마존 엔지니어처럼 좋은 스펙을 갖지 못한 미국인들에게, 코로나19는 가뜩이나 열악할 미국의 고용 안정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필수 노동자들이 미국 전역에서 병가도 없이 일하고 있다. 농작물을 재배하고 식료품을 관리하고 가축을 도축하고 상품을 포장·배달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노동자 보수와 고용을 보장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미국은 4000만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되도록 손을 놓고 있다. 해고된 많은 이들은 수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일시적 해고 지원금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기 훨씬 전, 한때 함께 상승했던 노동자 생산성과 임금은 급격히 결별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숙박, 식음료서비스, 교통, 헬스케어, 소매판매 등의 부문에서 노동자 보수는 정체됐다. 반면 집값과 의교비, 교육비 등은 계속 올랐다. 연방정부의 최저 임금은 2009년 이후 7.25달러에 멈춰섰다. 물가를 고려하면 1968년의 70% 수준이다. 생산성과 함께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가정한다면, 현재의 최저임금은 1/3 수준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위기는 미국 기업들이 뉴딜정책으로 도입된 노동권과 노동자의 협상력을 어떻게 약화시켰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의회와 법원 판결은 노조와 노조의 시위 전략을 불법화했다. 반면 공격적인 노조 파괴 노력은 합법화했다. 그리고 노동권이 주어지는 직업의 범위를 급격히 축소시켰다. 단기적 이익 상승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노동자를 간접 고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노동자 급여와 법적 책임을 장부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BBW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자본이 노동에 대해 더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며 "아니면 반대로 노동자들이 미 전역에서 벌어지는 기업의 '양털깎기'를 이참에 끝낼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노조보호법 제구실 못해

1935년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제정된 미국의 노동조합보호법 '와그너법'은 이론상 해고된 아마존 노동자들의 행동을 긍정하고 이들의 조직화 노력을 보호한다. 하자만 실제로 미국에서 해고의 문턱은 매우 낮아 고용주가 와그너법을 어겼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렵다.

고용주들은 특정 정치인의 광고 스티커를 차에 붙였다는 이유로, 주말에 동네 에이즈 재단에서 자원봉사를 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고, 해고하고 있다. 게다가 와그너법은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를 통해서만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NLRB와 관련해 고용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언젠가 체불임금을 줘야 한다는 것, 해고 노동자를 복직시키는 것, 행동을 고치겠다고 약속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떠한 처벌도 없고 개인에게 법적 책임도 묻지 않는다.

NLRB는 2년 전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건물관리 노동자들에게 패소 판정을 내렸다. 이들의 고용주는 한 명의 여성 노동자에게 '나와 잠자리를 갖는다면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등 여러가지 학대를 저질렀다. 이에 동료들과 함께 항의하자, 고용주는 이들을 해고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NLRB에 사건을 접수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3명의 노동관계위원들은 "해당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청소 업무를 맡고 있는 라디오방송국에 해당 사안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실수를 범했다. 그곳은 직접 고용주가 아니다"라며 노동자에 패소 결정을 내렸다.

'바스툴 스포츠'라는 블로그의 창업자는 지난해 트위터에 글을 올려 "노조 행동주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직원 누구나 해고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 직후 해당 사이트는 그같은 논란을 축하하는 티셔츠를 판매하기도 했다. NLRB로 이관된 이 사건에서 바스툴은 트윗을 삭제하고 '노동자를 위협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글을 일시적으로 게시한다는 데 합의하면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다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올 봄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격리가 시작됐을 때,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저가상품을 판매하는 유통기업 '달러제너럴'의 마켓애널리스트 대니얼 스톤은 지점 매니저와 경영진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1만6000곳 지점에서 일하는 필수 노동자들에게 보다 적절한 안전조치, 그에 따른 위험수당을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회사 상사들은 상투적인 대응으로 넘기다가 아예 그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익명으로 소셜미디어 '레딧'(Reddit)에서 소매부문 노동자들에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노동자들의 고충을 교환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여기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달러제너럴은 노동자들에게 헌 티셔츠로 만든 허술한 마스크를 지급했다. 페이스북엔 노조를 조직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올라왔고, 스톤은 '식품상업노동자연합노조'(UFCW)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UFCW도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노조 역시 달러제너럴 노동자를 수년 동안 조직화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달러제너럴은 지점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 투표에 찬성할 경우 수년에 걸쳐 소송을 벌여 투표의 유효성을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나선 해당 지점을 폐쇄했다. 올해 4월 중순, 스톤은 동료들에게 '조심하라'는 귀띔을 받았다. 레딧의 익명 프로필이 클라우드 서비스와 연계됐는데, 여기엔 스톤의 실제 프로필이 담겨 있다는 것. 즉 달러제너럴에서 스톤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스톤은 계속 노조결성 노력을 지속했다. 결국 4월 말, 회사는 전화로 그를 해고했다.

회사측은 3개월 동안 해고위로금 1만5000달러를 받으려면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합의서에 서명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스톤은 이를 거부했다.

"미국 고용주들의 공통점, 노동자 집단행동에 대한 극심한 반감" 으로 이어집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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