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학대·첨단부품소재공학 등 미래형 학사구조개편

과학·농업 융합, 대규모 산학 연구지원 사업 유치

코로나19에 따른 대학 변화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 원격수업에 따른 수업변화, 청년 일자리 감소 등 대학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위기를 극복할 대안과 상생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식물의학’ 전문가인 고영진 국립순천대 총장을 통해 ‘백신’ 개발과, 대학이 추진하고 있는 지역상생 방안, 미래사회를 담보할 대학교육 설계 과정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문명사적 측면에서 본다면 코로나19 사태는 인간문명과 자연과의 조화가 깨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이러스는 오래전부터 자연계에 존재해왔고, 인간문명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바이러스가 인간영역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는 인간문명과 자연과의 조화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준 것이죠” 고영진 국립순천대학교 총장이 코로나19로 인한 대학의 위기와 대응 방안을 설명했다. 바이러스 박멸이라는 단어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자연계에서 바이러스와 질서를 잘 잡고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신 개발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바이러스는 새로운 변종으로 인간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영진 총장│△순천대 제9대총장 △생명산업과학대학장 △현 전남테크노파크 이사 △전 한국식물병리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농학박사) △알버트 넬슨 마르퀴즈 평생 공로상 사진 순천대 제공


뒤집어 보면 바이러스에게는 인간문명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 총장은 새로운 대안으로 ‘생태백신’을 강조했다. 지구 생태계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현명함과 지혜로움이 필요하다는 것. 그동안 삶의 자세를 성찰하고, 기후변화를 늦추는 세계적 운동을 전개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기후변화와 그로 인해 사라질 생물다양성, 그 두 문제에 코로나19도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고 총장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며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우선 코로나19 발생 전후 순천대의 1년간 변화과정을 꼼꼼히 짚어나갔다.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졸업생(청년)일자리 확보에 실행력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효율성이 높은 정책을 설계하고 지자체와 협업을 통해 기초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인류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며 “과거의 언어, 과거의 교육방식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청년 일자리도 지속가능한 평생 직업이 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일자리=청년창업’이 될 수 있도록 대학과 기업, 지자체 등 민관의 융합력과 창의력을 강조했다.

■ 코로나 19에 따른 대학 위기 극복 방안은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이라는 악재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는 지역 대학들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으면서 대학 곳곳에서 경영 악화 증상이 나타났다. 식당 등 시설운영에 어려움이 발생했고, 원격수업 준비에 따른 비용이 증가했다.”며 “비대면 강의에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이는 등록금 환불 위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순천대는 비대면 수업에 사활을 걸고 정면돌파로 맞섰다.

교직원들의 원격강의 실력을 높이고, 학생 수업관리 시스템을 강화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제안에 교직원들이 동참했다. 한국의 ICT 강점을 최대한 살려 원격수업에 접목시켰다. 미래사회 교육의 일환으로 비대면 교육과정은 이제 필수가 됐고, 반대목소리를 내던 학생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고 총장은 “우리 대학뿐 아니라, 전국 모든 대학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포스트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이 지혜를 모으고 정보를 공유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순천대학은 지난해부터 미래지향적인 비대면 수업을 염두에 두고 구글 클라우드를 활용한 원격수업을 준비해왔다”며 “미리 준비한 수업변화 방식이 코로나19 대응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초기 시행착오나 큰 혼란이 없었다.

고 총장은 코로나 사태가 종식된다하더라도 원격수업의 품질을 더욱 높여 교육과정에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원격수업 인프라 확충에 예산을 더 투입할 계획이다. 코로나19라는 위기가 대학의 기회로 찾아왔고, 이를 적극 활용한다는 게 순천대 전략이다.

지난해 11월 순천지역 기관 및 단체장들이 지역사회 상생방안을 위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진 순천대학교 제공


■ 세계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식물의학’ 전문가 입장에서 본 백신개발 대안은 무엇인가.

2015년 중국 전통의학연구원의 투유유 교수는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을 개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 약은 말라리아 치사율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기가 매개하는 말라리아는 오랜 옛날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급성 열성 전염병으로, 매년 수십만에서 백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전염병이다.

한국에서도 천연물인 전통의약 재료를 통해 백신재료를 찾아내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본다. 순천대는 고들빼기에서 화장품 원료를 추출했고, 기업과 손잡고 이미 제품생산 단계로 접어들었다. 순천은 산과 바다가 인접한 친환경 도시다. 대학은 약학과, 한약자원개발학과, 농생명분야가 특화되어 있어 천연물 의학분야의 잠재력이 매우 큰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연구 역량과 인프라를 통해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을 위한 거점 연구센터 육성 계획을 세우고 있다.

■ 대학변화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순천대는 지난해 11월 2020학년도 교육과정을 개편했다. 미래지향적이고 학생참여 중심 교과목을 개발했다. 핵심은 융합전공 개발운영과 전공분야 신설이다. 에코환경디자인전공, 콘텐츠매니지먼트전공, 천연물의약산업전공 분야 교육과정을 탄생시켰다. 학과통합도 과감하게 추진했다.

한국대학 최초로 5개 학과를 2개학과로 통합시켰다. 웰빙자원학과와 식물의학과, 생물환경학과를 농생명과학과로 통합해 한국 농업선도대학으로 위상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기계공학과 우주항공공학은 기계우주항공공학부로, 정보통신공학과 멀티미디어공학은 ICT공학부로 조정하는 등 학령인구 대비와 청년일자리해소를 대비한 미래형 교육과정으로 변신시켰다. 2022학년도에는 6년제 약학대 학제 개편도 단행한다. 대학 교직원들의 노력은 성과로 나타났다. 순천대는 지난해 국립대 양성평등 우수대학으로 선정됐다.

지역사회 교육양극화에 따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사업도 추진했다. 청소년 교육지원사업 주관대학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올해 사업규모는 영남대에 이어 전국에서 2위로, 지역 초중고 학생 멘토링 캠프 사업을 확장중이다. 학생복지와 교육기부 활동 등 활발한 활동은 신입생 충원에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전남교육청이 지정한 고교-대학연계 프로그램 운영지원대학으로 확정됐고 사업비를 지원받는다.

■ 지구촌은 ‘지역중심 세계화’ 운동이 번지는 추세다. 코로나 위기는 경제위기로, 다시 식량위기로 번지고 있다. 국가 식량자급률을 높이는데 대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주식인 쌀 자급률이 100%에 가깝다. 덕분에 코로나19에 따른 위기감이 덜 느끼는 분위기다. 하지만 밀 자급률은 1.2%, 옥수수는 3.3%, 보리는 32%에 그치고 있다. 이들 품목을 주원료로 하는 가공품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한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장기화 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식량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주요 밀 수출국인 러시아, 카자흐스탄이 수출제한에 나섰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에 밀 수출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여러 나라가 국경을 봉쇄하면서 사람 이동이 제한되고, 이는 농산물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됐다. 미국과 유럽도 농산물 공급 부족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퍼지는 현상이 자주 나타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이는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식량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문제로 봐서는 안된다. 국가안보차원에서 접근할 시점에 이르렀고, 당장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순천대학이 지역사회와 손잡고 청년중심의 ‘스마트팜’을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정책도 이러한 위기를 대비한 것이다. 농업과 농학이 중요한 이유다. 이를 위해 생명산업대학에 있는 웰빙자원학과, 식물의학과와 생물환경학과를 ‘농생명과학과’로 통합해 2021학년부터 운영한다. 농생명학과는 전국 최초로 첨단기술과 융합된 농업을 지역사회와 함께 주도해 나가는 정책이다. 이곳을 통해 식량안보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하고, 지속가능한 청년일자리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 최근 국립순천대를 중심으로 의과대학병원 신설 의견이 많은데 가능성은 있는지

전남 동부권 의과대학 유치는 전남도민 숙원사업이다. 전남도는 세종특별자치시를 제외한 광역시도 중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다. 1인당 평균 진료비도 전국 최고로 비싸다. 주민 만성질환 발생 비율 또한 전국 1위로, 의료취약 지자체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따라서 대학병원은 전남 동부권 지자체와 시민들의 최대 숙원사업이다. 순천대는 1996년 의과대학 설립 타당성 연구를 시작으로 광양, 여수와 공동으로 의대 유치에 심혈을 쏟아 왔다. 고 총장은 “순천을 중심으로 전남 동부권 인구가 100만이 넘는다. 여기에 여수국가산단, 광양 포스코, 율촌산단 등 산업체가 밀집해 중증 응급의료체계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코로나19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공공의료가 취약한 지역의 경우 초동대처가 어렵다는 점에서 순천대 의대 유치,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의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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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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