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견제 동참

방위비협상 압박

독자적 남북협력?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2박3일 방한은 예상대로 '대북용'이 아닌 '대남용'에 무게가 실렸다. 북한과는 접촉시도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북한을 향해 발신한 메시지 역시 적극적인 대화재개보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비건 부장관 스스로도 "우리는 북한과 만남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번 방한은 우리의 가까운 친구와 동맹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서훈 국가안보실장,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면담 |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9일 청와대에서 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와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신 우리정부 외교안보라인 인사들과의 연쇄 접촉을 통해 우리 정부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고, 미국의 생각을 전달하는 쪽에 주력했다.

대북특별대표 역할보다는 국무부 부장관 역할에 더 치중한 셈이다. 방한 일정도 이에 맞게 짜여졌다.

7일 미 군용기 편으로 한국에 도착한 비건 부장관은 다음날인 8일 오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세영 외교부 1차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을 잇따라 만났으며 오후에는 국가정보원을 방문했다.

또 9일에는 청와대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을 만났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미 국무부는 9일(현지시간) 비건 부장관의 방한에 대한 보도자료를 통해 "한미동맹의 힘과 남북협력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했다"면서 "비건 부장관은 북한과의 대화에 관여하겠다는 미국의 준비자세를 이어갔다"고 전했다. 이어 "비건 부장관은 뜻이 맞는 나라들간의 협력과 좋은 거버넌스와 규칙에 근거한 국제질서를 약화시키려는 시도에 대응하는 것을 포함, 인도태평양 지역내 안보와 번영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덧붙였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미중간의 전략경쟁 속에서 반중 전선에 동참을 요청했을 것으로 관측됐다.

국무부 보도자료에는 없지만 현재 교착상태인 한미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에 대한 압박도 있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서훈 국가안보실장과의 면담과 조세영 외교부 1차관과의 만남에서 방위비 문제가 공통적으로 등장한 것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조속히 마무리하자'는데 양측이 뜻을 같이했다고 하지만 이는 표면적 입장일 뿐이다.

실제로 증액을 둘러싼 양측 이견이 여전한 상황이라 '조속타결'은 미측 입장을 빨리 수용하라는 압박일 수 밖에 없다.

또 한 가지 관심을 모은 대목은 최근 한국사회 일각에서 힘을 얻고 있는 한미워킹그룹 무용론과 독자적인 남북관개 개선론이다.

이와 관련 비건 부장관은 8일 이도훈 본부장과 만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남북협력이 한반도에 더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며 "한국 정부가 북한과 남북협력 목표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한국 정부를 완전히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건 부장관의 이런 발언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한 기간 중 미국에서는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북한을 불량국가로 다시 한 번 규정했고, 북핵문제에 대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를 공식 성명에 담기도 했다. CVID는 북한이 항복문서에나 등장할 문구라며 극도로 거부감을 표시하는 용어로 한동안 미국에서도 사용을 자제해 온 용어다.

따라서 비건 장관의 발언이 진정성이 있는지 혹은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얼마나 힘이 실린 것인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건 부장관은 9일 방한 때마다 즐겼던 닭한마리로 오찬을 한 뒤 이날 일본으로 넘어갔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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