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식 지연 최장 … 개최 여부 불투명

공수처 법정 시한 내 출범도 물 건너가

문재인 대통령이 1987년 개헌 이후 처음으로 개원연설을 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이미 역대 개원식 지연 기록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개원식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까닭이다. 국정성과를 위해 국회 협조가 절실한 청와대는 속만 태우고 있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중단됐던 의사일정 협상을 재개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발언하는 김영진 원내수석 |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원내총괄수석부대표(오른쪽)가 13일 국회에서 미래통합당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와의 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앞서 민주당 김영진, 통합당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는 13일 회동을 갖고 21대 국회 개원식과 야당 몫 국회부의장과 정보위원장 선출 등의 문제를 논의했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민주당은 하루빨리 원구성과 의사일정 협상을 마무리하고 개원식을 열자는 입장이지만 통합당은 법사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되돌려 놓아야만 부의장 선출 등 정상적인 개원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맞서왔다. 통합당은 지난 8일 야당 몫의 부의장을 거부하기로 한 바 있다.

양당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21대 국회는 이미 개원식 지연 기록을 갈아치웠다. 1987년 개헌 이후 그동안 가장 늦게 개원식이 열린 것은 18대 국회에서였다. 2008년 7월11일 열린 개원식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개원연설을 했다.

여야간 협상 난항으로 제헌절 이전 개원식 개최가 불투명해지면서 아예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온다. 국회 개원식은 3부 요인 등을 초청해 국회 출범을 알리고 축하를 받는 자리다.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국회의원들은 개원식에서 성실한 직무수행을 국민들에게 약속하는 선서를 한다. 하지만 개원식 개최가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다. 여야가 끝내 합의 하지 못하면 개원식 없이 국회가 굴러갈 수도 있다.

청와대는 당초 법정 개원일인 6월 5일 개원식이 열릴 것으로 보고 문 대통령의 개원연설을 준비했다. 그러나 개원식이 한달 이상 미뤄지고 그 사이 국내 현안과 남북관계 등의 상황이 바뀌면서 수차례에 걸쳐 연설문 수정작업이 이뤄져왔다. 이마저도 빛을 볼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국회가 개원식을 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지금 분위기에서 문 대통령이 국회에 가서 개원을 축하한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문제는 국회의 협조 없이는 문 대통령의 국정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당장 문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법정 시한인 이달 15일 이내 출범이 사실상 물건너 갔다. 국회가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을 선정하지 않아 후보추천위원회 구성조차 못한 상황이다.

청와대는 코로나 재확산에 대비해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7.10 부동산 대책 후속입법 등도 국회에서 신속히 처리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도 국회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다. 청와대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다. 이 가운데 박지원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열기 위해선 정보위원장을 선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회 부의장을 먼저 선출해야 하지만 통합당이 거부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가 현안들을 풀어가기 위해선 국회협조가 필요하다"며 "하루 빨리 개원식을 갖고 국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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