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범죄보다 관대한 처벌 … 집행유예 선고비율 10%p 높아

"이사의 충실의무 '회사'가 아닌 '전체 주주'를 위해서로 개정

이익 상회하는 처벌해야 화이트칼라 범죄 반복 막을 수 있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23일 개최한 세미나에서는 한국 법원이 여전히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징벌적 효과가 거의 없는 집행유예 선고를 지나치게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류영재 포럼 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3.5 법칙'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을 만큼 재벌 총수들에게는 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등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있다"며 "빵 몇 개를 훔친 도둑보다 수백 수천만개의 빵을 주주들로부터 빼앗은 재벌 총수들의 횡령 분식회계, 편법적 자본거래 등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3.5 법칙'은 재벌 총수나 전문경영인이 탈세나 횡령 등을 해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죄는 인정하지만 처벌을 하지 않아 사실상 재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3.5 법칙'이 통용되는 사회 =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채이배 전 의원은 경제개혁연대가 양형기준 제정 전후 집행유예 선고율을 조사한 결과를 근거로 한국 법원이 화이트칼라 범죄의 양형 선택에 있어 다른 범죄에 비해 집행유예 선고를 선호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화이트칼라 범죄 피고인들의 1심 재판에서의 집행유예 선고 비율 71.1%에 달했다. 특경가법상의 횡령, 배임죄 등 화이트칼라 범죄의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득액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 및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득액 50억원 이상)으로 절도·강도죄의 법정형보다 훨씬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 선고 비율이 오히려 더 높았다.

이후 2007년 7월부터 2013년 2월 말까지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비율은 1심 43.9%, 항소심 53.4%로 이전보다는 1심 집행유예 선고비율과 항소심 집행유예 선고비율이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일반 범죄의 집행유예 선고비율과 비교하면 약 10%p가량 높았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비율이 높아지는 경향 또한 여전했다.

채 전 의원은 또 "이득액 규모에 따른 양형을 살펴보면 통상적으로 범죄 이득액 규모가 클수록 실형 선고비율이 증가하지만,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우 범죄 이득액 증가가 실형선고의 증가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범죄이득액 50억 미만의 경우 실형 선고율이 57.1%였으나, 50억 이상 300억 미만 구간에서는 실형 선고율이 오히려 40.7%로 16.4%p나 감소한 것이다.

채 전 의원은 "법원이 형법상의 작량감경 조항을 이용해, 대부분의 기업범죄를 징역 3년 이하로 선고함으로써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남용하고 있다"며 "항소심의 경우 특별한 사정변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형을 깎아주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엄정한 사법처리, 지배구조개선 계기 = 총수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가 기업 가치에 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재계 측은 총수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는 의사결정의 공백을 가져온다며 재벌총수에 대한 사법처리가 기업 가치에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채 전 의원은 "사법처리는 총수일가가 그룹 지배권 유지와 승계라는 사적 이익을 위해 계열사의 기업 가치를 위협하는 관행에 대한 최종적 규율수단"이라며 "총수에 대한 실형선고는 전횡에 대한 견제장치로 기능하여 이후 지배구조 개선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기업가치에 더 긍정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총수가 감옥에 가도 기업 가치에는 큰 영향 없다"며 "경제에 대한 우려로 관대한 처벌(집행유예)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실형 선고를 받는 경우 기업가치 즉 경제에는 더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상법 개정 필요 = 천준범 변호사는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관대한 처벌 원인으로 △회사법과 회사관계에 대한 경험부족 △사법 소극주의 △집행유예도 유죄 판결이라는 심정적 위안 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이사의 충실의무'에 대한 상법개정안을 제시했다. 천 변호사는 "회사의 손해 기준으로는 특정 주주를 위한 경영행위를 절대 막을 수 없다"며 "주주 전체의 이익보호를 이사의 충실의무로 포함시켜 지배주주의 사익추구를 근본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이사는 회사에게만 충실하면 법적 책임이 없었으나, 이제는 회사뿐만 아니라 총주주(전체주주)를 위해 충실해야한다는 것이다.

한편 류 회장은 "최근 한일시멘트그룹의 최대주주 허기호 회장이 계열사 합병과정에서 주가하락을 위해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금융당국에 조사를 받고 있고, 한국타이어그룹의 최대주주 조현범 사장이 배임 횡령으로 2심이 진행되는 등 화이트칼라 범죄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 포럼을 개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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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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