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권력기관 개편 등 '민심 우호적' 판단

' 어차피 못막아' … 야당 무기력 대응도 한 몫

더불어민주당의 입법독주가 거침이 없다. 30일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2법'을 처리한데 이어 오는 8월 4일 부동산 관련 법안 처리를 예고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와 검찰 직접수사 축소(6대 범죄) 등 권력기관 개혁법안은 11월 초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협력 파트너인 정의당조차 '전형적인 통법부의 모습'이라며 비판하고 있지만 '밀어붙인다'는 뜻에는 변함이 없다.

민생 관련 입법을 '또박또박' 해 나간 후 국민의 평가를 받겠다는 것인데, 입법화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시급한 민생현안에 대한 책임있는 여당의 행보가 '협치 실종'이라는 비판을 상쇄할 것이라는 판단도 담겨 있다. 한편으로는 176석의 슈퍼여당을 만들어준 민심에 연말까지 가시적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조바심도 있다.
개의 선언하는 김태년 |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해찬 대표의 불참으로 대신 개의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부동산 이어 권력기관 개편까지 = 국회는 30일 본회의에서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임대차 2법'을 처리했다. 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채 186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지 하루 만에 본회의에서 의결된 법안은 31일 임시 국무회의 의결로 완성됐다. 민주당은 전월세신고제 등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과 부동산 관련 법안을 다음 달 4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또 30일 당정이 재확인한 권력기관 개혁 입법을 11월 초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정은 30일 국회에서 협의회를 열고 검·경, 국정원 등 권력기관 개편방향을 논의했다. 검찰의 1차적 직접 수사 분야 한정, 광역단위 자치경찰제 시행, 국가정보원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기로 했다.

문재인정부 주요 국정과제였지만 지난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사안들이다. 내달 중 으로 관련 법안을 발의해 정기국회에서 입법화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에게 국민이 부여한 시대적 소명"이라고 했고,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집권여당으로서 관련법 개정을 신속히 추진할 예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 주류교체 실감" = 민주당의 이같은 입법독주는 176석에서 나온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176석 힘으로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인다"고 토로한 것이 상징적이다.

민주당 안에서는 총선민의의 연장이라고 합리화 한다. 30일 임대차 2법 통과 후 민주당 안에선 "경제분야의 국가보안법 같았던 과제를 풀었다"며 반겼다는 평가가 나왔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전월세상한제나 종부세 강화는 민주화 이후 진보진영이 경제개혁 구호로 외쳤던 과제들"이라며 "중산층과 서민을 보호하는 개혁법안이지만 기득권에 막혀 번번이 무산됐는데 이번에는 총선 민심으로 처리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층 단단해진 여권의 지지기반이 가져온 변화라는 분석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유권자 지형의 변화가 현안에 대한 인식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라며 "민심의 지지가 있으니 구호에 그쳤던 경제관련 법안을 현실화 시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엄 소장은 이어 "현안 의제를 제기하고 당정이 일관된 메시지와 신속한 대응을 펼쳐 이슈를 주도할 수 있는 것이 여권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야당이 협치실종이라고 반발하지만 당 지지율 등에선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라고 봤다.

◆야당 '회피전략' 논란 = 부동산이나 코로나19 대응 등 시급한 민생현안 처리라고 하지만 야당을 뺀 여당의 일방통행식 운영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여권 안에서도 일방독주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당 핵심관계자는 "야당이 경제입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 논의가 이뤄질텐데 그렇지 못한 상태"라면서도 "민생경제 등 시급한 현안과 협치정신을 반영해야 하는 사안을 나눠 대응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부동산·권력기관 개혁 등과 달리 '일하는 국회법·공수처·행정도시 이전' 등은 야당과 대화를 전제로 투트랙으로 처리해 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 야당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해 대응해 갈지는 미지수다. 최근 현안 처리에서 여당의 입법독주 못지않게 야당의 무기력한 대응도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의 법안 처리가 '난동 수준의 입법'이라면서도 상임위와 본회의장에서 퇴장을 반복하는 회피전략으로 일관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엄경영 소장은 "20대 국회의 선거제 협상을 거부하면서 통합당이 어떤 실익이 있었는지를 살펴야 한다"면서 "반복적인 회피전략은 제1야당의 존재감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3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반대토론) 에 대해 "필리버스터는 180석이 넘으면 하루 만에 중단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의석으로 밀어붙이는 여당을 막을 장치는 없고, 여론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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