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인력부족·열악한 근로조건, 국민건강 훼손 … "지속근무 가능하도록 제도·환경 갖춰야"

코로나19사태 극복을 위한 24시간 방역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활동에 대해 국민의 지지가 높아졌다. '백의의 전사'가 된 간호사들은 신종감염병 대응뿐만 아니라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전국 지역사회에서 노인 장애인 등 건강취약계층을 찾아가 돌보는 역할도 하고 있다. 정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나 지역통합돌봄사업에서 간호사의 역할을 강조한다.

하지만 간호사 인력 부족으로 병원 내 양질의 간호서비스는 훼손되고 있고, 열악한 근로조건은 숙련된 간호사 양성을 어렵게 한다.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한국보건의료체계에서 간호사 역할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에 본지는 28일 대한간호협회회관에서 신경림 간호협회장(37대)을 만나 간호환경 개선을 위한 질문을 던졌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은 | 1976년 이화여대 간호학사/1992년 미국 콜롬비아대 박사/이화여대 간호대 명예교수(2019년∼현)/제 7차 세계건강질적연구 학술대회 조직위원장(2018년∼현)/통일간호포럼 대표(2017년∼현)/19대 국회의원(보건복지위, 여가위)(2012년-2016년)/2015 국제간호협의회 총회 및 각국대표자회의 조직위원장(2010년∼2016년)/ 32대, 33대 대한간호협회장(2008년∼2012년)


신 회장은 "간호사들이 코로나19 같은 신종감염병에 24시간 대응하고, 급증하는 만성질환자 건강관리에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간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간호법 제정을 강조하는데.

간호사 관련 법규가 11개 부처 99개 법령으로 흩어져 있다. 방문간호는 장기요양법, 보건소 간호사는 보건법 등으로 분산돼 종합적인 간호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게 돼 있다.

간호법이나 간호조산법을 만들어야 한다. 의료법에서 간호법을 독립시켜 간호사의 역할과 업무 범위, 장기적인 수급방안, 근로환경 개선 등에 대한 간호정책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야 유능하고 숙련된 간호사들을 꾸준히 양성시킬 수 있다.

간호사의 이익을 챙기자는 게 아니다. 의사들의 권한을 빼앗자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수준 높은 보건의료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중국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에도 간호법이 있는데 우리나라만 없다. 의료인의 67%가 간호사다.

■ 통합적인 간호정책 추진을 위해 정부전담조직 신설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간호사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감염병 대응이나 만성질환 관리 등에서 간호사는 핵심적인 의료역량이다. 보건복지부에 '간호정책과' 같은 간호전담 부서가 필요하다. 의사는 의료정책과, 약사는 약무정책과, 치과의사는 구강정책과, 한의사는 한의약정책과가 있어 직능 고유의 정책활동을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부처 내 간호사 전담조직이었던 간호정책과는 1973년 폐지됐다. 법정인력 준수, 근무환경 개선, 간호법 제정 등을 해결하기 위한 실무부서가 있어야 한다.

■ 중환자실 간호사 인력이 부족하다.

중증질환을 다룰 수 있는 간호사가 부족한 상황이다. 중환자를 돌볼 수 있는 숙련된 간호사를 확보하려면 신입간호사가 병원을 오래 다닐 수 있도록 제도·환경을 바꿔야 한다.

병원에서 3년 정도는 일을 해야 중증도 있는 환자를 돌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40%이상이 신입 상태에서 떠나버린다. 1977년 제가 대학 졸업 후 미국 갔을 때와 비교해 지금 간호 근로환경이 나아진 게 없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매년 2만명 이상 신규간호사가 나오는 나라는 미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손꼽을 정도다. 국내 신규간호사 확보의 어려움은 없다. 문제는 신규간호사가 떠나지 않는 근로환경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간호사의 모성을 지금의 병원환경은 받쳐주지 않는다.

코로나19 같은 재난성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중환자를 돌볼 수 있는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한다. 신종감염병에 대한 의료대응은 환자 사망률을 낮추는 게 우선이다. 그럴려면 시도마다 비상시 중환자실과 응급실 간호사를 확보할 교육훈련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 법정 간호인력 정원을 안 지키는 병원이 68%가 넘는다.

심각한 문제다. 있는 법도 못 지키고 있다. 의료법에 중환자실 간호사 2인이 환자 5명을 보게 돼 있다. 일반병동에서는 간호사 1인이 12명을 보게 돼 있다. 그런데 지키지 않는다. 간호사 1인이 평균 18∼25명을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제도 속에서 어떤 간호사가 견딜 수 있겠는가. 신규간호사가 3개월이 지나면 생리불순, 6개월 지나면 소화불량에 걸린다. 소변도 제때 못 보고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깊어지면 6개월 지나면 견디기 힘들게 된다. 총체적으로 근로환경을 바꿔야 한다. 지금 상태라면 10년 20년 후에 간호사를 누가 할지 걱정이다. 근로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과태료만 내면 별다른 제재 없이 병원운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현장을 떠나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이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가 최소한 법정 간호인력 기준을 지키지 않는 병원에 대해 업무정지 등 행정처분을 강화해야 한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경증환자 위주로 왜곡돼 있다.

메르스 때 간병인이나 가족의 감염을 막기 위해, 그리고 간병비 부담을 없애기 위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했다. 그런데 변형운영으로 수익만 챙기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병원이 경증환자를 우선 입원시키고 중환자는 돌볼 간호사가 없다는 이유로 기피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중환자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환자선정의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키는 병원에게 서비스 가산료를 지급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명칭도 통합간호서비스로 바꿔야 한다. 질 높은 간호서비스에 중점을 두자는 것이다.

■ 지역사회통합돌봄 제도에서 간호사의 독자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의 의료법상으로는 의료인들이 협력관계 속에서 활동할 수 있게 돼 있지 않고 주종관계로 돼 있다. 의료법상 간호활동은 의료기관에서만 영향을 미친다. 지역사회통합돌봄체계에서 의료기관만이 아니라 실제로는 가정집이나 요양시설에서도 간호활동이 이뤄진다. 예를 들면, 노인환자가 집에 있지만 의사가 가정 방문진료를 하지는 않는다, 간호사가 방문간호를 통해 케어플랜을 세우게 하고 그 과정에서 의사가 영상이나 통화로 노인환자와 상담하고 처방하도록 할 수 있다. 이것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방문간호사 역할이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우선 의사의 지시가 있어야 간호활동이 가능하다.

지역 활동 간호사에 대한 처우개선도 중요하다. 보건소 간호사는 대부분이 계약직이다. 1년 계약을 하면 퇴직금도 줘야 하니 11개월로 계약하고, 하루 8시간 근무가 아닌 7시간 근무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피해가는 편법이 만연하다. 보건소 간호사 채용을 정규직으로 고쳐야 한다. 간호사들에게 적절한 보상과 안정적인 신분을 보장해줘야만 지역사회에 필요한 숙련된 간호사들이 늘어나고 방문간호도 정착될 것이다.

■ 환자에게 양질의 간호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도 직장내 괴롭힘(태움)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태움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열악한 근로환경과 부족한 인력 운영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의료기관, 간호계가 연대해 해결해야 한다.

병원은 신규 간호사가 현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소 1년 이상 필요한 교육을 진행하도록 의무화하는 자체 내규 등을 마련해야 한다. 또 병원 내에서 간호사, 의사, 다른 직종 직원, 환자 등 상호간 존중하는 문화 확산을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다양한 폭력에 대한 예방·보고·관리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도 의료법에 명시된 간호사 배치 기준, 간호등급 신고 의무화, 법정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등 법률이 자켜지는지 적극적으로 관리감독해서 간호사들이 과중한 업무부담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간호협회도 간호사를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회원고충 접수창구 등을 통해 간호사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역할을 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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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문진헌 정치사회편집위원정리 사진 김규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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