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일부 무죄 선고한 원심 파기환송 … "이미 성적인 동기 내포 됐다"

회식이 끝난 뒤 "모텔 가자"며 회사 후배 여직원의 손목을 강제로 잡아끈 행위가 '강제추행'으로 인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7월 6일 자정쯤 회식을 마친 뒤 후배 회사 경리 직원 B씨와 단둘이 남게 되자 "모텔에 가고 싶다"며 강제로 B씨의 손목을 잡아끌어 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왔다. 또 같은해 7월 12일 오후 회사 사무실에서 B씨 오른쪽 손등에 자신의 오른손을 올리는 방법으로 강제추행한 혐의도 있다. 같은해 10월 24일 저녁때 고깃집에서 회식이 끝날 무렵 B씨 뒤에서 "2차 가자"며 어깨, 허리 부위를 계속 손으로 만져 강제추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2심, "손목은 성적 수치심 유발 부위 아냐" = 1심은 A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도 명령했다. 1심은 "A씨는 B씨를 모텔로 강제로 데려가기 위해 손목을 잡아끈 것으로 고의를 인정할 수 있고, 이는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유형력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심은 회사 사무실에서의 추행만 유죄로 인정하고 나머지 2건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해 형량을 벌금 300만원으로 낮췄다.

2심은 "A씨가 접촉한 B씨의 신체부위는 손목으로써 그 자체만으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신체 부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A씨는 손목을 잡아끈 것에 그쳤을 뿐 성적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는 다른 행동에까지 나아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추행보다는 '성희롱'에 가깝다고 본 것이다.

이어 B씨가 수사 과정에서 'A씨를 설득해 택시를 잡아 함께 타고 집에 갔다' 등을 진술한 점에 비춰 B씨가 A씨 행위에 반항하는 것이 불가능했거나 곤란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강제추행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2017년 10월 24일 A씨가 회식 자리에서 B씨의 어깨 등을 만진 혐의에 대해서도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 판단했다. 다만 같은해 7월 12일 강제추행 혐의는 유죄 판단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 "강제 추행 맞다" = 대법원은 회식 자리 추행에 대해서는 원심과 같은 무죄 판단을 유지했으나, 모텔에 가자며 손목을 잡아끈 행위는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A씨가 모텔에 가자며 B씨의 손목을 잡아끈 행위에는 이미 성적인 동기가 내포돼 있고 추행의 고의가 인정된다"며 "피해자를 쓰다듬거나 안으려고 하는 등의 행위가 있어야만 성적으로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접촉한 신체 부위를 기준으로 성적 수치심 여부를 판단한 2심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또 추행과 함께 이뤄지는 폭행은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가 아니어도 무관하다며 비록 B씨가 A씨를 설득해 집에 보냈다고 해도 강제추행죄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제추행죄는 폭행 자체가 추행인 경우도 포함되며 이 경우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것인 이상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판시했다.

또 "B씨는 입사한 지 약 3개월 된 신입사원이고 A씨는 B씨와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직장 상사인 점 등을 고려하면 A씨 행위는 B씨 의사에 반해 이뤄진 것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추행 행위"라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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