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30년' 버티는 힘

한은 "최근 기업 성장동력으로 해외 직접투자 확대"

일본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출발해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한 때 '빅2'의 경제규모를 가졌던 나라이다. 지금도 일본은 '빅3'의 경제대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경제는 아베정권 등장 이후 부분적으로 살아나는 듯하더니 최근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한 데 이어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전후 75년을 맞는 일본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지난 1일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소프트뱅크 로보틱스가 만든 로봇인 '페퍼'가 코로나19 방지를 위한 규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은 '버블경제'가 붕괴한 1990년대 이후 30년 가까이 성장이 정체돼 있다. 일본은 1991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0.9% 성장에 그쳤다. 그런데도 경제대국으로서 지위를 누리는 데는 막대한 해외자산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정착돼 웬만한 위기에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만들어진 셈이다. 기축통화로 인정받으면서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있는 엔화의 국제적 위상도 역할을 한다.

◆미국 국채보유 1등 국가 = 한국은행은 최근 '일본의 최근 해외직접투자 동향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한은은 이 보고서에서 "일본은 그간 축적된 해외자산으로부터 발생한 투자소득에 힘입어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지속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저성장과 저출산 환경 아래에서 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해외직접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일본은 막대한 해외순자산 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행 자료에 따르면 해외순자산 규모는 2019년 기준 365조엔(4047조원)에 달한다. 1996년 106조엔 규모에서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일본의 해외순자산 규모는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예컨대 일본은 가장 안전한 자산의 하나인 미국 국채를 제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미국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올해 1월 기준으로 미국 국채를 1조2117억달러(1435조8600억원) 보유하고 있다. 두번째로 많은 중국(1조786억)보다 1331억달러(157조8000억원)나 많은 세계 1위다. 한국은 미국 국채를 1211억달러(144조7000억원) 보유하고 있다. 일본의 1/10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대외순금융자산은 5009억4600만달러(593조6200억원) 수준이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2000년대 들어 일본은행의 금리인하 및 양적완화 시행으로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 국채를 중심으로 투자가 증가했다"며 "다만 아베정부 집권이후 대규모 양적완화로 인한 엔화약세 등으로 해외증권투자가 소폭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 = 일본은 과거 '제조업 왕국'으로 수출을 통해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다. 1985년 미국 주도로 이뤄진 '플라자합의'도 일본과 독일 등의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줄여보려는 조치의 일환이다. 이런 일본이 최근 무역을 통해서는 적자를 내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이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에너지 수입이 급증하면서 무역수지에서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지난 11일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6월 국제수지 동향'(속보치)에 따르면, 일본은 상품의 수출입 등으로 발생하는 무역수지에서 773억엔(8570억원) 규모의 적자를 냈다. 수출이 25.7% 감소한 4조7930억엔, 수입은 14.4% 줄어든 4조8703억엔을 기록했다. 서비스수지도 외국인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1577억엔(1조7480억원)의 적자를 냈다.

그런데도 전체 경상수지는 1675억엔(1조8570억원)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다. 해외투자로 벌어 들이는 이자와 배당수입 등의 실적을 보여주는 1차 소득수지에서 4264억엔(4조7279억원)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일본 재무성이 이날 발표한 일본의 올해 상반기 전체 경상수지는 지난해보다 31.4% 줄어든 7조3069억엔(80조98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 구조를 분석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일본은 해외투자에 따른 배당 및 이자소득을 의미하는 본원소득수지가 주를 이루지만, 한국은 수출입교역에 따른 상품수지 흑자가 주를 이룬다"면서 "상품수지는 세계경기의 부침에 따라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투자소득 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훨씬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동남아로 가는 일본의 해외투자 = 일본은 최근 들어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 직접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1970년대는 무역마찰을 회피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대한 현지 생산시설 투자를 늘렸지만, 1990년대 이후는 중국과 아시아지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

여전히 해외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증권투자 비중이 높은 미국과 유럽 등이 68.9%를 차지하지만 직접투자는 아시아 비중을 늘리고 있다. 직접투자의 지역별 비중을 보면, 유럽(30.4%)과 북미(29.8%), 아시아(27.8%)가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남미와 아프리카 등 기타지역은 12% 수준이다.

특히 일본은 2010년대 들어 아세안 국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세안 5개국과 싱가포르 등에 대한 투자가 아시아지역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50.7%까지 높아졌다. 상대적으로 중국에 대한 투자는 아시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 31.3%에서 지난해는 25.2%로 줄었다.

비제조업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본의 비제조업에 대한 해외투자는 8306억달러로 제조업(5573억달러)를 크게 웃돈다. 이 기간 신규투자의 60.1%를 비제조업이 차지한다. 비제조업에서는 특히 금융보험업과 도소매업에 대한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무역진흥기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금융보험업에 대한 투자비중이 27.1%로 가장 높고, 도소매업과 통신업이 각각 23.2%, 17.1%를 차지했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일본이 국내에서의 경쟁 심화와 인구감소 등으로 은행과 보험사들의 해외진출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은 "일본 1위 은행인 미쓰비시UFJ은행은 베트남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지역 주요 상업은행 인수를 통해 해외 진출을 추진했다"며 "이에 따라 해외 대출 및 해외 예금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미쓰비시UFJ은행의 올해 3월 현재 해외 대출 및 예금의 잔액 비중은 각각 40.6%, 22.2%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후 75년, 일본경제의 빛과 그림자" 연재기사]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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