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제3자 PPA 시행 … "산업요금체계 함께 손봐야"

'전기사업법'개정 작업 중 … 기업 PPA도 가능해지나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오히려 온실가스 감축 요구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4일(현지시간) AFP통신과 영국 케임브리지대 지속가능성 리더십 연구소에 따르면 150여개 글로벌 기업 CEO들은 최근 유럽연합(EU) 지도부에 보낸 서한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 55% 감축해 기후변화로 인한 최악의 영향을 피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효과적인 경제회복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거부감을 표해왔던 것과 사뭇 다른 모양새다.

우리나라도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의 길이 열린다.

발전사업자와 기업간 직접적인 전력 거래가 불가능한 현실을 보완한 제도다. 한국전력이 중개자 역할을 해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측과 구매자간 거래가 가능토록 했다. PPA의 기본 취지는 소비자인 기업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간 자율적인 장기고정가격계약을 통해 미래 투자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23개국 100개 이상 기업들은 PPA를 통해 2019년 클린에너지(탄소 배출이 없는 친환경에너지, 재생에너지)를 전년보다 40% 이상 많이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 PPA를 통한 클린에너지 확대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것이다. BNEF는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선언한 회사 221곳(1월 기준)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0년 210TWh의 클린에너지를 추가로 구매해야 한다"며 "이 부족분이 PPA로 충족된다면 전 세계적으로 약 105GW의 새로운 태양열 및 풍력 건설을 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RE100은 최소 2050년까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필요한 전력량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원을 통해 발전된 전력으로 사용하겠다는 캠페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제3자 PPA만으로는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촉구하기에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중개자가 끼어 추가 가격부담 우려 등이 있는 만큼 아예 직접 거래가 가능토록 하는 제도(기업 PPA)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성환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노원구병)은 지난 7월 기업 PPA가 가능토록 하는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PPA는 구매자와 전력 생산자간 합의한 기간 동안 사전 동의된 가격으로 전력에너지를 구매하는 게 기본 취지다. 제3자 PPA와 기업 PPA의 가장 큰 차이점은 중개자 유무다.

◆"기업들의 모럴헤저드 등 방지 대책 마련 중" = 2021년 1월부터 기업과 발전사업자, 한국전력간 3자 계약을 통해 재생에너지 거래가 가능해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녹색프리미엄제(녹색요금제)만으로는 기업의 RE100참여를 독려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제3자 PPA제도도 함께 도입했다. 녹색요금제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녹색프리미엄제를 선택해 사용하면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 구매확인서를 발급해주는 것을 말한다.

김승완 충남대 교수(전기공학과)는 "RE100 도입을 위한 큰 그림이 나왔다면 이제는 세부적으로 어떻게 시행해야 할지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나가야 할 때"라며 "단순히 인센티브 등 단편적인 것을 볼게 아니라 산업요금 체계 전반까지 함께 고려해야 제도가 실패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계절별·시간대별 요율이 다르긴 하지만 밤 시간대 산업요금은 상대적으로 낮 시간대보다 저렴하다"며 "A라는 기업이 낮 시간대에 제3자 PPA제도를 활용하다가 밤 시간대에는 기존 체계를 이용하면 한국전력 입장에서는 당연히 손해가 날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보완공급(전기를 공급하는 특정 사업자가 전기를 공급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일반 전기 사업자로부터 부족한 전기를 공급받는 것. 여기서는 재생에너지가 발전하지 않는 시간대에도 전기를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단가까지 함께 고민을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므로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A기업 관계자는 "PPA의 장점은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거래를 해 가격경쟁을 할 수 있다는 점인데, 제3자 PPA는 한국전력의 전력공급 약관에 규정된 형태로 계약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내년 제3자 PPA거래가 시행되기 전에 시간대별로 잘라서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보완책을 마련 중"이라며 "기업들의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 문제이지 가격 정책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제3자 PPA는 기업과 재생에너지 발전사간에 가격을 결정하고 한국전력은 중개를 해줄 뿐 가격 형성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며 "한국전력이 기업들에게 망 이용료 정도를 받을 텐데, 적정하고 공정하게 망 가격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상준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제3자 PPA의 경우 당연히 기업 PPA보다는 관리비용, 수수료 등 가격 상승 요인이 있다"며 "하지만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은 기상 변동성이 심해 발전 가능한 에너지양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제3자 PPA는 발전시설이 예측한 양과 실제 생산량의 차이(스케줄링 위험)를 한국전력이 커버하는 측면이 있다"며 "또한 제3자 PPA를 도입했다고 기업 PPA를 못하는 게 아니고 법 개정사항이라 시간이 걸릴 뿐 함께 운영해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북미 등에서 확대 속도 빨라, 기업 자율성이 중요 = 지난 7월 김성환 의원은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신설된 전기사업법 16조 전기공급약관 내용은 재생에너지 전기공급사업자가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한 전기에 대해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전기사용자에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따른 요금과 공급조건 등은 개별적인 협의로 계약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성환 의원실 측은 "제3자 PPA의 경우 한국전력이 신규 재생설비 발굴 역할을 해야 하므로 재생에너지 확대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직접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원과 연계해 계약하도록 해 설비 증가효과를 높이도록 하는게 개정안의 취지"라고 소개했다.

또한 "기업들이 자유롭게 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해 사업성을 높이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PPA는 북미에서 활발하다. 북미나 유럽 등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제3자 PPA라는 제도는 없기 때문에 기업PPA, 제3자 PPA라는 식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PPA가 북미나 유럽 등지에서 진행하는 제도에 가깝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전 세계 35개국이 PPA제도를 도입(2017년 기준)했으며 시장 규모는 114TWh 수준이다.

PPA확대 속도는 미국이 제일 빠른 편에 속한다. 2017년 북미 기준 약 2.78GW 규모의 PPA계약이 이뤄졌으며 북유럽은 주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IT기업 중심으로 거래(2017년 800MW)가 형성됐다.

실제로 한국전력거래소의 'RE100 이행을 위한 재생에너지 구매제도' 보고서에 따르면 PPA는 미국이나 유럽 등 전력시장이 자유화된 국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국가별 PPA체결 상위 10개국 중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4개국이 북유럽 국가였다. 에너지원별로는 태양광과 풍력 위주로 운영되고 있으며 미국은 태양광이, 유럽은 풍력 위주였다.

이상준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PPA든 제3자 PPA든 가장 중요한 점은 공정한 망이용료 책정에 있다"며 "전력망을 이용할 때 일정 부분 비용을 내야 하는데, 기업 PPA 방식으로 거래를 할 때 한국전력 고객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더 비싼 가격을 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탈탄소, 새로운 도약 'RE100' " 연재기사]

김아영 이재호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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