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돌고 돌아야 제 역할을 한다. ‘화폐’가 가치의 척도이자 교환의 매개라는 본연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활발히 유통되어야 한다.

지식재산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 이제 전통적 생산요소보다는 무형의 지식재산에 의해 더 좌우되는 상황에서, 지식재산이 기축통화처럼 국제적인 가치의 척도이자 교환의 매개로 그 기능을 넓혀갈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침해에 대한 배상 강화 입법으로 신뢰 구축

지식재산이 혁신을 매개하고 이끌어내려면 이것이 활발히 거래되는 환경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상황은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 한국은 한해 20만건 이상의 새로운 특허를 출원하는 세계 4위의 특허대국이지만 지식재산을 담보로 하는 금융대출이나 지식재산 펀드상품에 대한 투자규모는 경쟁국의 수백분의 일에 불과하다. 지식재산 보호 수준에 대한 국제적 평가도 낮아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순위는 겨우 38위다.

양적 창출역량에 비해 지식재산의 역할이 기대만큼 커지지 않는 것은 과거 우리의 경제성장 형태와 관련이 깊다. 혁신적인 발명이나 가치있는 브랜드를 직접 개발하고 보유하는 것보다 가급적 우회하거나 침해하는 것이 더욱 경제적이라는 인식이 은연중 우리 사회에 스며든 결과라는 얘기다. 추격형에서 선도형 경제성장으로 체질 대전환을 이루어야 하는 지금 과거의 지식재산 문화를 더 방치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지식재산이 제 역할을 하려면 그 가치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최근 침해에 대한 배상체계 개선작업을 일단락지은 것은 신뢰구축 측면에서 큰 성과였다. 지난해 7월부터 고의적 특허침해에 대해 3배 배상을 하는 법률이 시행에 들어간 데 이어, 지난달에는 3배 배상이 적용되는 지식재산의 종류를 상표 디자인 아이디어 탈취로까지 확대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올 12월부터는 특허침해자가 아무리 많은 물품을 팔았더라도 권리자의 생산능력만을 기준으로 적은 금액만 배상해도 되는 불합리한 법체계 또한 개선된다. 이제 좋은 지식재산을 갖는 것이 베끼는 것보다 당연히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환경이 갖추어지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 1호 상품 25분 만에 완판

다음 단계는 시장에서 활발히 유통되게 하는 것이다. 부처 간의 열띤 협의 끝에 7월 총리 주재 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지식재산 금융투자활성화 전략’이 확정되었다.

이 전략으로 양질의 지식재산권들이 크라우드 펀딩, 유동화 증권 등 다양한 형태로 금융시장에 공급될 예정이다. 7월 출시된 ‘지식재산투자 크라우드 펀딩 1호 상품’은 단 25분 만에 완판되어 지식재산 금융의 전망을 밝게 해주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작년 343억원에 머물렀던 지식재산 금융투자 규모가 향후 5년간 1조3000억원 규모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로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이 가속화되고 보호무역 파고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달러화나 엔화를 찍어낼 순 없으니 통화정책으로 급변하는 통상환경에 대응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혁신기반 경제의 기축통화’ 지식재산이 있다. K-방역에서 확인했듯이 지식재산만큼은 한껏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의적인 역량이 우리에게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국의 지식재산이 전세계에 유통돼 활발히 부가가치를 낳는 것, 그것이 지식재산 금융투자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기대하며 가진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