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호기관 1명 상담지원 연간 459회 과부하 … "피해장애인 돌봄 가능한 체계 필요"

2019년 장애인학대 통계자료에 따르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전체 장애인 학대 신고접수 건수는 4376건으로 대폭 늘었다. 학대의심사례 신고 역시 전년보다 증가했다. 학대 양상은 발달장애인의 학대피해가 두드러졌고 장애인거주시설 등 집단이용시설에서 발생하는 학대 역시 늘고 있다. 하지만 학대를 예방·조사하고 피해장애인을 적절히 보호할 인력과 인프라 부족은 여전하다. 내일신문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 증진을 위해 장애인 학대 예방책 등 대안을 찾아본다. <편집자주>


#. 학대피해자 A(20대 경증지적장애)씨가 모친의 남자친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신고가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접수됐다. 신고자는 해당 사실을 A씨의 모친에게 알렸다. 하지만 그 모친은 경찰신고나 제3자의 개입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권익옹호기관은 인력 부족으로 현장조사가 늦어져 신고접수 6개월 뒤 A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A씨는 가출해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현장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이 신고 건은 비학대 사례로 종결됐다.

#. 와상장애로 혼자 거동하지 못하는 B(지적·뇌전증 장애)씨는 노인장기요양 판정을 받아 가정간호 및 이동목욕를 이용했다. 하지만 집안에 쓰레기와 고물이 쌓여 진입이 불가해 장기요양서비스 이용이 중단됐다. B씨의 남편은 매일 술을 마시고 B씨를 폭행하고 목욕이나 약복용을 챙기지 않았다. B씨 안전을 시급히 확보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권익옹호기관은 인력부족과 피해자가 입소할 수 있는 응급분리처 확보에 시간이 소요돼 3개월 뒤에야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성주 의원(더불어민주당·전주병)실, 장애인학대 관련사례 자료)


장애인의 학대의심사례를 조사하고 긴급보호 활동 등을 담당하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쉼터의 인력과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따르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전국 광역시·도 17곳에 18개 기관(경기도 2곳)이 설치돼 있다. 기관별 상담원은 기관장과 업무 지원인력을 제외하면 2∼4명 수준에 불과하다. 적은 인력이다 보니 상담원 1인당 담당사례는 연 40건이 넘고 있다. 상담 및 지원횟수는 연간 459회에 이른다.

학대 피해장애인이 분리 보호를 받는 쉼터의 경우, 올 6월 현재 전국 12곳에 설치돼 있다. 17개 광역시도 중 개소되지 않은 지역이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설치된 시·도에 각 한 개 쉼터만 설치돼 성별, 장애유형별, 연령별 분리 돌봄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장애계 안팎에서 학대 발생 초기 신속한 조사와 보호 조치가 이어지기 위해 관련 인력과 인프라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장애인구 지역 특성에 따른 인력 배치 필요 =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따르면, 장애인 학대의 특성상 발생 초기에 빠른 개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건이 흐지부지되거나 피해를 제대로 밝히기 힘든 경우가 태반이다. 피해자 지원 또한 필요한 시점에 집중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시기를 놓쳐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김동기 목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권익옹호기관장을 포함해 4명 정도의 열악한 인력으로는 조사 개입하는 수준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며 "신속하고 적절한 결과를 내기 위해 인력확보를 위한 예산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대의심사례가 신고되고 있는 경기도의 경우 남북으로 지형이 갈라져 조사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경기북부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경기도의 지원으로 신규 개관하면서 경기도 전체의 신고접수 건수는 2018년 395건에서 2019년 981건으로 2.5배 늘었다. 조사 실시 비율도 24.9% 늘었다.

은종군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은 "단순히 기관 하나가 신설됐지만 피해장애인들과 접근성이 쉬워질수록 숨겨져 있던 문제가 드러나고 피해자에 대한 양질의 지원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경기도 사례에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경북과 강원도의 경우 담당지역이 넓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사를 위한 이동에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다른 지역기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례조사를 위해 2인 1조가 원칙이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한 탓에 1명이 현장조사를 하다보니 조사와 지원이 부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조사 지연으로 비학대로 종결처리된 경우가 2018년 조사지연 138건 중 비학대 종결이 110건, 2019년 조사지연 78건 중 74건이 비학대로 종결됐다.

은 기관장은 "조사가 상당기간 지연되면서 증거확보 어려움, 당사자 간의 합의 등으로 비학대로 종결처리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장애인구수와 지역 특성에 따라 인력 추가 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옹호기관·쉼터 확충, 피해장애인 보호지원 질 높여 = 피해장애인 쉼터는 6월 기준 인천 광주 세종 경남 전북지역을 제외한 전국 시·도 12곳에 설치돼 있다. 그런데 2019년 응급조치 실시 현황을 보면, 쉼터가 아닌 장애인거주시설을 이용한 비율이 2018년보다 되레 늘었다.

2019년 장애인학대사례 945건 중 응급조치는 106건이었다. 2018년 104건과 비슷하다. 그런데 쉼터를 이용한 경우가 43건, 장애인거주시설은 37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8년 장애인거주시설 19건 사례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쉼터의 부족으로 장애인거주시설을 이용한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보호전문기관인 쉼터에서 심리정서적 돌봄 등을 받아야 하는 피해장애인이 시설에 머물게 되면 적절한 돌봄이 제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지역별로 1개씩 설치돼 있다보니 성별이 다르면 같은 공간에서 보호를 받기가 어렵다. 이에 2019년 장애인학대보고서는 "피해장애인 쉼터는 전국 17개 지자체에 피해장애인의 성별을 고려해 적어도 2개 이상 설치돼야 하고 운영을 위한 예산 등도 지금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동기 교수는 "쉼터는 학대공간에서 피해장애인을 분리해 돌보는 정도의 서비스 제공을 넘어 정서심리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보고서에는 3개월에서 6개월 쉼터보호 이후 피해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강조되고 있다. 갈 곳이 없어 피해자가 거주시설이나 또다시 학대 현장으로 돌아가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위한 주거서비스와 경제적 자립을 위한 자립정착금지원, 맞춤형 일자리 창출 등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지역사회의 지원체계 마련에도 공들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이동석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인권센터가 담당하던 장애인차별방지-인권교육 등이 권익옹호기관이 설치되면서 되레 축소됐다. 옹호기관이 그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쉼터 또한 아동 전용쉼터와 피해가족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 등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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