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착공 후 계획서 심사 “형식적 심사 조장”

작성은 외부기관이 대행 “숙제 대신해주는 격”

“고용부, 개선 위한 의지와 실력 보이지 않아”

작업이 시작되기 전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유해위험방지계획서’제도가 현장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법령 규정과 감독기관 심사·확인이 현장과 괴리된 서류작업만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42조는 ‘건설공사 유해위험방지계획서에 서류를 첨부해 공사 착공 전날까지 제출하면, 15일 이내에 심사해 결과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제조업이 작업개시 15일 전에 제출하는 것과 달리 건설공사는 공사·공종별로 착공 전날 제출하면 돼, 사실상 착공 후 심사를 제도화했다. 하지만 공사가 진행된 후에는 계획서가 미흡해도 현실적으로 공사중지명령이나 계획변경명령을 하기는 어렵다. 결국 형식적 제출·심사를 조장하고, 계획서에 ‘부적정’이 나오지 않는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다.

건설공사는 애초 착공 30일 전까 지 제출해야 됐으나, 1999년 9월 시행규칙 개정으로 착공일 전날로 바뀌었다. ‘건설업체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라는 게 개정사유였다. ‘위험방지’보다 ‘부담경감’을 우선한 결과는 산재사고 증가로 이어졌다. 이후 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없이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계획서 작성을 대부분 건설회사가 거의 관여하지 않고 외부컨설팅기관에 통째로 맡기는 점도 고질적 문제다. 외부기관들은 공사현장 특성을 반영하기보다, 정해진 틀에 따라 계획서를 작성한다. 그러다 보니 건설회사가 다른데도 계획서 내용은 거의 동일한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건설회사 안전관리자로 18년 근무한 ㄱ씨는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외부컨설팅업체가 대신 작성하는 것은 숙제를 학생이 하지 않고 학부모가 대신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숙제를 해도 학생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것처럼, 계획서 작성을 계기로 시공업체의 안전보건역량이 올라가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성 부족에 따른 부실한 심사도 큰 문제다. 또 다른 대형건설회사 강원도 현장의 안전환경팀장 ㄴ씨는 “공단 직원이 해양공사나 철탑설치공사 같은 특수한 분야는 특히나 잘 모르고, 전문성이 없다 보니 심사와 확인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며 “면피용으로 서류만 잔뜩 요구한다”고 말했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유해위험방지계획서 개선방안은 용역중”이라며 “연말까지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유해위험방지계획서 부실은 오래전부터 나온 문제이고 업계뿐만 아니라 고용부, 공단 모두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개선을 위한 의지와 실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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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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