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기획조정실장
우연히 1997년 방영된 전원일기 ‘헐값! 금값!’ 편을 다시 보게 되었다. 불량종자 사기극에 속은 양촌리 주민들의 서글픈 사연이었다. 본전이라도 건지기 위해 가락시장으로 향하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터무니없는 경매가로 농민들을 두번 울리는 현장 뿐이었다.

20여년이 지났지만 가락시장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대부분의 농민은 양촌리 주민들처럼 자식과도 같은 농산물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경매에 올린다.

농민·소비자 울고 경매회사만 이익 챙겨

왜 이런 일이 생길까? 가락시장은 경매제도 독점시장이기 때문이다. 경매제는 도매시장법인(경매회사)이 농민에게 농산물을 독점 수탁받아 경매를 통해 중도매인에게 판매한다. 농민은 자신의 상품 가격결정에 전혀 개입할 수 없다. 가락시장의 경매거래 비중은 75%에 달한다.

품질에 따라 경매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같은 날 동일상품이 경매 회사별로 최대 12배까지 가격 차이가 난다. 또 소농·영세농은 품질과 상관없이 대농에 비해 경매가격을 낮게 받는 등 공정과 거리가 멀다.

경매제 독점폐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농산물은 수요량이 일정해 경매는 당일 시장 내 거래물량에 따라 가격변동이 극심하다. 한 예로 올 7월 배추가격의 경우, 이틀 합계 70% 가까이 올랐다가 다음날 36% 하락했다. 이런 일은 다반사다.

이렇듯 가락시장의 경매제 독점이라는 고질병으로 농민과 소비자는 울고 있으나, 가락시장 청과 도매시장법인은 연간 약 1500억원의 수수료 수익을 챙긴다. 한 농민단체의 표현대로 공영도매시장에 농민과 소비자는 없고, 도매시장 법인만 있는 형국이다.

해외 선진국은 경매제가 사라진 지 오래다. 미국과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이미 오래 전 경매제를 접고, 농민단체와 도매상인 간 협상을 통한 거래(시장도매인제)로 전환했다. 우리나라가 운영모델로 삼은 일본 역시 경매거래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어 현재는 1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선진국이 포기한 경매제를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농식품부가 올바른 처방전 내야 할 때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도매시장법인 수수료 담합 혐의로 1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19년에는 박완주 최재성 의원이 도매시장 유통구조 개선을 담은 농수산물유통및가격안정에관한법률(농안법) 개정을 발의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도 만장일치로 농안법 개정을 건의했다. 올 7월 국회 입법조사처는 경매제 독점 개선을 정부(농식품부)에 주문했다. 언론도 주목하고 있다. 다수 매체에서 가락시장 경매독점의 폐해에 대해 수십차례 보도했다.

2000년 국회에서 농안법을 개정해 지자체 권한으로 시장도매인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다만, 법시행규칙에 따라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가락시장 개설자인 서울시는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도 병행을 통해 생산자의 출하 선택권을 보호하고 유통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해답이라 판단한다. 이에 2012년과 2015년에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농식품부가 이해관계자 합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도매시장법인이 막대한 이익을 포기하고 합의할 리 만무하다.

이제 다시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도 도입을 추진하고자 한다. 농식품부는 실현불가능한 조건을 달지 말고 농민과 소비자를 위한 올바른 처방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