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호 관계 수십년래 최악 … '대중 의존도 줄이자' 목소리

호주산 석탄이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19일 "중국의 발전소와 제철소가 주문을 잇따라 취소하고, 중국 항구에서 호주 국적 선박의 선적을 외면하고 있다"며 "이는 중국 당국의 구두 지시를 따라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호주산 품목을 금지한 동기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 국내 석탄산업을 부양하기 위한 목적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 석탄산업은 과잉생산으로 고전하고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선례가 있었다.

하지만 호주 여론은 중국과의 외교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호주를 겨냥해 본때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중국의 방적공장들 역시 호주산 면화 구매를 중단토록 당국의 지시를 받았다는 일부 매체 보도에 호주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이같은 조치들은 최근에 이뤄졌다. 호주가 미국 일본 인도를 포함한 '쿼드 동맹' 모임에 참석한 직후다. 중국은 쿼드 동맹을 '배타적 패거리'로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호주와 중국의 관계는 2017년 이후 악화일로다. 당시 호주 안보당국은 "중국이 호주의 내정에 깊숙이 개입한다"고 경고했다. 호주가 중국의 화웨이를 5G 네트워크에서 배제한 첫 번째 국가가 되면서 갈등은 고조됐다. 올해 초 호주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주범으로 중국을 지목하며 이에 대해 국제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관계는 더 악화됐다.

코로나19 국제조사를 주장한 호주에 중국은 거세게 반발했다. 중국의 한 외교관은 호주의 행보를, 브루투스가 로마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배반한 것에 빗대기도 했다. 중국은 호주산 쇠고기와 보리, 와인의 수입을 금지했다. 또 호주의 인종주의를 비난하며 호주로 향하는 중국 유학생과 관광객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드니 공과대 호주-중국관계연구소의 제임스 로렌세슨 소장은 도이체벨레에 "호주와 중국 간의 정치적 긴장은 2017년부터 확연해졌다 … 올해 바뀐 점은 그같은 긴장이 무역관계를 해칠 정도로 확대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공포에 사로잡힐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올해 호주의 대중국 수출 비중이 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올해 1~8월 호주의 중국 수출량은 2.3% 하락한 반면, 나머지 모든 나라의 중국 수출량은 11% 넘게 하락했다.

호주의 과도한 중국 의존도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교역품을 겨냥한 중국의 제한조치는 '수출시장으로서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호주 내 논쟁에 불을 지폈다.

중국은 지난해 호주 수출액의 1/3, 약 1690억호주달러(1200억달러)를 차지한다. 철광석과 석탄, 가스 등은 호주의 최대 수출품이다. 이 품목들은 중국 수출의 약 60%를 차지한다. 호주 대학과 관광업계도 중국인 의존도가 크다. 중국은 대 호주 최대 투자국 중 하나다.

일부 안보전문가들은 그같은 중국 의존도에 호주가 극도로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이 경제적 지렛대를 활용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한다는 것.

최근 안보 싱크탱크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는 전 세계 국가 2/3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지난 10년 동안 유럽연합(EU) 등 27개국에 강압적 외교를 펼쳤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강압적으로 대응한 이유는 △신장 소수민족에 대한 제대로 된 처우 주장 △5G 네트워크에서 화웨이 배제 △영토분쟁에 중국을 비난 △달라이 라마의 방문 추진 등이다.

중국의 강경대응은 2018년 이후 급격히 늘었다. 무역과 관광 제한 등 경제적 조치는 물론 임의구금이나 공식방문 금지 등 비경제적 조치를 포함한다. 이런 조치를 많이 받은 대상국은 캐나다와 미국, 캐나다 순이다.

인도는 중국 대안인가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호주가 중국 이외의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제안한다. 호주 정부와 기업들은 인도와 베트남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나라들은 호주 상품 수출을 위한 전망 있는 시장으로 인식된다.

지난해 호주 스콧 모리슨 총리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했다. 모리슨 총리는 올해 1월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만나기로 했으나 호주 대화재 때문에 취소됐다. 결국 올해 6월 양국 정상은 화상회의를 통해 만났다.

하지만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끊어낸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친 요즘은 더욱 그렇다.

호주국립대 세계중국센터의 제인 골리 소장은 도이체벨레에 "살아생전 최악의 글로벌 경제침체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가 세계 2대 경제국가이자 올해 GDP 성장률에서 플러스를 기록한 유일한 주요 국가인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회의감을 표했다.

골리 소장은 "올해 GDP 추산에 기초하면 중국은 인도보다 7배 이상의 생산량을 내는 나라"라며 "중국 시장을 대체하려 다른 나라를 쳐다보는 건 실현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광대한 인구와 성장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호주 에너지와 원자재의 중국 수요를 대체하기엔 인도 시장의 규모가 많이 달린다. 지난해 호주가 인도에 수출한 규모는 230억호주달러에 그쳤다. 중국이 사들인 상품과 서비스의 극히 일부분이다. 전문가들은 또 모디 총리 재임 동안 힌두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무슬림이 점차 주변으로 밀려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인도 시장이 마냥 장밋빛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위협은 하지만 행동 자제하는 중국

시드니 공과대 로렌세슨 소장은 중국의 무역 제한조치에 과잉대응하지 말 것을 충고한다. 중국이 위협은 하지만 실제 행동은 자제하고 있다는 것. 그는 "과거 사례를 보면 호주 석탄과 쇠고기, 와인 등에 대한 중국의 제한 조치들은 양국의 전반적인 무역에 그리 심각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방아쇠를 당기기 꺼려한다. 그럴 경우 중국의 이익 역시 해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품질의 호주산 철광석과 점결탄은 중국 제철소가, 호주산 유연탄은 중국 발전소가 선호하는 연료다. 중국의 성장 신화를 완성시킨 핵심 원자재다. 호주산과 비슷한 규모와 품질의 원자재를 공급하는 국가를 찾는 일은 중국에게도 쉽지 않다.

자급자족의 녹색 중국은 큰 리스크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상황은 변할 수 있다. 중국이 경제성장 둔화를 감수하고라도 자급자족, 환경친화적인 정책을 펴게 된다면, 호주산 석탄과 철광석 가스는 예전처럼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석탄 수요 95%를 자급자족한다. 호주에 경제적으로 타격을 주기 위해 10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호주 광산업체들은 중국 공백으로 생긴 손실을 만회하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자국이 2060년까지 탄소 순배출 제로를 달성할 것이라며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약속했다. 중국의 녹색성장 정책 추진은 석탄과 가스 등 전통적인 원자재 수입이 감소할 것임을 의미한다. 특히 중국은 탄소배출량이 많은 제철소들을 중점적으로 관리를 하겠다고 나섰다. 호주 철광석 광산 기업들의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다.

도이체벨레는 "중국의 막대한 수요 덕분에 호주는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침체를 모면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중국 내 상황이 변하고 있다. 호주는 넉넉한 이익을 보장했던 중국, 그리고 화석연료에 대한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이젠 그같은 경제모델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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