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세계 일류기업’에 올려

매출 39배, 시총 396배 증가

20년간 D램 세계시장 1위

삼성 직원들과 함께 촬영하는 이건희 회장 |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1년 삼성 직원들과 함께 촬영하는 이건희 회장. 삼성 제공=연합뉴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영면했다. 2014년 5월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6년 5개월간 투병 끝에 25일 생을 마쳤다. 향년 78세.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선대회장의 3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1987년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삼성을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이바지했다.

이 회장 취임 때인 1987년 삼성그룹 매출액은 10조원이었다. 2018년 387조원으로 39배 늘었다.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증가했다.

이같은 외형적 성장에는 이 회장의 품질ㆍ인재경영 철학이 있었다. 그는 1993년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했다. 불량으로 닫히지 않는 세탁기 덮개를 칼로 깎아내고 조립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미국 가전 매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구석에 놓여 있는 모습에 통탄했다.

1995년 불량 무선전화기 15만대 를 과감히 불태우며 품질경영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양을 중시하던 기존 경영관행에서 벗어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경영 방향을 선회시켰다. 그 결과 삼성은 2020년 브랜드 가치가 623억달러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다. 스마트폰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세계베스트 상품을 기록하는 등 세계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 회장은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인재경영’을 펼쳤다. 연공 서열식 인사 기조가 아닌 능력급제를 전격 시행했다.

“1명의 인재가 10만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처럼 인재제일 철학을 강조하고 창의적 핵심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 데 힘썼다.

1974년 반도체사업에 뛰어들면 서 삼성뿐 아니라 한국경제 신성장동력을 개척했다.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회장은 사회공헌활동을 기업 의 또 다른 사명으로 여겼다.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켰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첨단장비를 갖춘 긴급재난 구조대도 조직했다. 삼성은 연인원 50만명이 300만시간 동안 사회공헌활동에 나서고 있다.

이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스포츠 외교 활동을 벌였다.

고인의 장례식은 삼성서울병원 에서 4일장으로 치러진다. 삼성과 유족들은 간소한 가족장으로 치르며 조화와 조문을 사양한다고 전해왔다. 하지만 정ㆍ재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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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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