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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약자 동행' 퇴색 … 재계부터 챙기는 국민의힘

경제단체 초청, 중대재해법 불만 청취

'추가 개정' 재계 요청에 "살펴보겠다"

정의당 "재계를 위한 힘" 강경 비판

"노동계에 손짓해놓고 재계 방어입법"

등록 : 2021-01-12 11:38:43

국민의힘이 1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재계 인사들을 초청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누더기' 평가를 들으며 국회를 통과한 지 사흘 만이다.

'약자와의 동행'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경제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당의 정체성 앞에서 무색해졌다는 지적이다.

◆주호영 "합의한 것 아니다" =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손경식 경총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등 6개 경제단체 관계자들을 국회에서 만나 간담회를 열었다.

화상 원내대책회의 주재하는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화상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법 등에 대한 재계의 우려와 건의를 듣고 심의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 국민의힘 초청으로 성사된 자리였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중대재해법과 관련한 당의 입장을 상세히 전했다.

그는 "며칠 전 통과된 중대재해법 때문에 걱정이 많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무조건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발표하는 순간, 그대로 두면 정말 형편없는 법이 될 것을 우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법 조문 하나하나에 문제가 많고 위헌적인 요소가 있었고 형법상 책임 원칙도 부합하지 않았다"며 "심의도 안 하려고 했지만 그대로 통과될 경우 벌어질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고 심의를 들어가서 많이 수정·삭제했다"고 했다.

손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업인을 범죄자로 내모는 중대재해법이 통과됐다"며 "추후엔 금번에 통과된 여러 기업부담법도 면밀히 살펴봐주고 추가적 보완 입법을 조속히 해줄 것 요청한다"고 곧장 '용건'을 공식 제의했다.

그는 "징역형 하한을 없애고 상한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재검토돼야 한다"고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법이 만들어졌다(김기문 회장)" "중대재해법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게 건설산업분야인데 건의가 하나도 반영 안 됐다(김영윤 전문건설협회장)" 등 재계 인사들의 불만도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이날 주 원내대표는 "저희가 (중대재해법에) 합의한 것은 아니다" "합의 처리된 법안을 저희는 대부분 반대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간담회 이후 추가 개정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법이 급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어 현장 문제를 알려달라 했고, 살펴보겠다고 얘기했다"며 여지를 남겼다.

정의당은 즉각 반발했다.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불과 사흘 전, 후퇴를 거듭한 끝에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아예 무용지물로 만들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수석대변인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원인 제공자는 일터의 안전과 죽음을 방조한 재계"라며 "국민 두려운 줄 모르고 재계의 호통에 움츠리는 제1야당은 재계를 위한 힘이 될지언정 결코 국민을 위한 힘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가족부터 위로했어야" =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당시 '약자와의 동행'을 기치로 내걸고 여성·청년·노동자 등에 초점을 맞추는 행보를 한동안 보였다.

'고 최숙현 선수 사건' '정인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지난해 수해복구 현장을 여당보다 발 빠르게 찾으며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여당이 중대재해법 처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동안 사망 노동자 유가족과 정의당의 단식농성장을 방문하고 임시국회 내 처리를 약속하며 여당을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법안 심사 과정에서는 적용대상 축소, 유예대상 확대, 처벌수위 완화 등 '법안 후퇴'에 앞장서며 여당 대신 '악역'을 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노동계를 향해 손짓해놓고 재계를 위해 방어입법을 한 셈"며 "약자와 동행하겠다는 정당이라면 먼저 유가족부터 찾아 위로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최수영 디아이덴티티 소장은 "노동계도 재계도 욕하는 입법을 피할 수 없다면 입법으로 당의 달라진 정체성이라도 보여줬어야 하는데 애매한 지점에서 봉합이 되고 말았다"며 "중도확장이라는 애매한 전략 속에 정체성을 넣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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