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조율 후에도 "50인 이상, 준비기간 부족"

시민재해, 담당 못 정해 위반 공표 대상서 빠져

10만명 청원엔 "취지 반영", 청원자 "고려 안돼"

중소벤처기업부가 여야 조율이 마무리됐는데도 기업들의 준비기간 부족을 내세워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 기간 확대를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정부는 중대시민재해를 담당할 부처를 정하지 못하는 등 준비상황이 매우 허술하다는 것도 드러났다. 10만명 동의를 얻어 법사위에 올라온 '중대재해법 제정' 요구 법안에 대해서는 청원인의 생각과 달리 "취지가 반영됐다"고 의결하고는 '본회의 불부의'를 결정했다.
농성 해단식에서 우는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달 11일부터 단식에 들어갔던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8일 저녁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 본회의 통과 뒤 국회 본관 앞 농성장에서 열린 농성단 해단식에서 울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13일 국회의원들에게 배포된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마지막으로 논의한 지난 7일 법사위 법안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강성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은 "업계에서는 (유예기간) 이게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유예기간을) 1년밖에 주지 않았기 때문에 50인을 초과하는 다수의 중소기업들이 아직 있기 때문에 상당히 준비 기간으로서는 매우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여야가 '1년 후 시행, 50인 미만 3년 후 시행'안에 의견을 모은 이후였다. 결국 수용의사를 밝혔긴 했지만 '노동자의 생명, 안전' 대신 '소상공인'의 편에 선 셈이다.

중기부는 중소상공인의 입장을 이유로 '5인 미만 사업자 제외'를 주장해 관철시켰다. 또 유예기간과 관련해 '50인 이상 100인 미만 2년, 50인 미만은 4년'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기존 정의당 강은미 의원안과 민주당 박주민 의원 수정안에 비해 '100인 미만' 구간을 추가로 설치하고 유예기간도 대폭 늘린 것이었다. 결국 '100인미만' 구간을 없애긴 했지만 '50인미만 구간'의 유예기간은 여야의 의견보다 늘어난 '3년'이 됐다. 중대재해법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인 10일과 11일 이틀에 걸쳐 전남과 광주의 50인미만 사업장에서 한명씩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3년'간 유예된 사업장이었다.

또 정부의 준비상황이 매우 미흡한 것이 확인됐다. 중대산업재해는 고용노동부가 관할하지만 중대시민재해에 대해서는 책임질 부처를 어디로 할지 조율되지 않았다. 의무 위반 사업장의 명칭, 발생 일시와 장소, 재해의 내용 및 원인 등 발생사실을 공표할 수 있는 대상에서 '중대시민재해'는 빠진 채 '중대산업재해'만 들어간 이유다. 조항의 제목도 '중대산업재해 발생사실 공표'로 바꿨다.

같은 이유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 이행 등 상황 및 중대재해 예방사업 지원 현황을 반기별로 국회 소관상임위원회에 보고"하는 의무가 구체적인 책임부처가 아닌 '정부'로 통칭됐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은 "산업재해 관한 부분은 저희들(고용노동부)이 충분히 산업안전법을 준용해서 할 수 있습니다마는 다른 부처에 대해서는 사실 고민이 조금 부족하다"고 했다. 따라서 중대재해의 종합적인 예방대책의 수립·시행과 발생원인 분석 등의 예방활동 의무와 예산지원 업무를 담당할 정부 부처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셈이다. 이 규정(16조)은 유예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되자마자 시행된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제안해 10만명의 동의를 얻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청원'과 관련, 백혜련 법안소위원장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의 제정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우리 소위원회에 (청원이) 회부됐다"며 "오늘 법률안을 의결함으로써 동 청원의 취지가 달성되었기 때문에 청원을 본회의에 부의하지 아니하기로 의결하려고 한다"고 했고 이의가 없자 통과시켰다. 김 씨는 "국회의원들은 우리 입장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는다"며 "우리 심정을 모르니까 그러는 거 아닌가. 국민들이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이 다치는데도 그들은 절대 이해하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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