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너무 아리다. 이번에도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큰 눈망울에 웃으면 반달모양의 눈이 사랑스러운 아이, 고작 생후 16개월밖에 되지 않은 정인이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아 온몸에 멍이 들고 장기가 파열되어 세상을 떠났다.

아동학대는 한두해 일이 아니다. 2017년 친부와 동거녀의 학대로 암매장당한 고준희 사건, 지난해 여행용가방 안에서 숨진 ‘천안 계모 아동학대 사건’ 등 끔찍한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해질 때마다 정부는 각종 개선방안과 방지대책을 내놓았다.

2019년 학대로 사망한 아이만 42명

안타까운 것은 많은 법령을 제정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등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대책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아동학대는 해마다 늘어 2019년 4만1000여건을 넘겼고, 한해 동안 사망한 어린이만 무려 42명에 이른다.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는 어린 생명이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어 시행에 들어갔다. 주요 내용은 민간에서 수행하던 아동학대 현장조사 업무를 지방정부에서 전담해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1월 8일 이 법을 더 보강한 ‘정인이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아동학대 신고 즉시 수사, 현장 공무원의 출입범위 확대, 아동과 학대가해자 분리조치 강화, 자녀의 체벌 금지 등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입법발의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아동학대 방지에 대한 법과 제도를 현장에서 수행할 수 있는 지방정부의 전담기관 및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동복지법에 의하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지자체별로 1개씩 설치되어야 하나 2020년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수는 68개소에 불과했다. 전국 226개 시·군·구의 30% 수준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지자체에는 아동학대 전담공무원들이 배치되고 있으나 잦은 출동과 민원으로 벌써부터 기피업무로 외면받고, 순환보직으로 인한 업무의 전문성 강화는 힘든 상황이다.

법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이 잘 지켜질 수 있는 지방정부의 환경조성이 우선 돼야 한다. 아동학대 방지제도와 처벌규정이 없어 ‘정인이 사건’을 막지 못한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 내 아동인권 증진과 아동학대 인식개선사업 진행, 아동학대 사례별 맞춤형 전문 서비스 제공,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학대피해아동쉼터 확충, 전담 공무원 증원 및 전문성 제고 등 행정과 지역사회가 법과 제도에 발걸음을 맞추어나갈 총체적인 변화가 따라야 할 것이다.

지방정부 환경부터 조성돼야

아동정책의 기본방향은 아동에 대한 공공책임을 확대하여 아동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으로 ‘보편성’과 ‘공공성’ 강화가 핵심이다. 아동이 보호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가 될 때까지 행정과 지역사회가 발걸음을 맞추어나가야 한다.

관악구는 민선 7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커질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지난해 3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로부터 ‘아동친화도시’로 인증을 받으며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자랑스럽고 보람된 일이지만 아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아프리카에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이제 ‘모든 아이’가 ‘모두의 아이’가 될 수 있도록 가정뿐 아니라 지방정부와 국가, 지역사회 모두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