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

‘팔아서 남는 게 없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 필자는 ‘노마진’ 이런 말은 믿지 않았다. 남는 게 없는데 왜 장사를 하겠나?

그런데 최근 불거진 탄소국경세 도입 관련 논의를 보면서 우리나라 수출산업이 남는 게 없는 장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탄소국경세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부과되는 세금인 탄소세와 국경을 넘을 때 부과되는 관세가 합쳐진 새로운 형태의 세금이다. 한마디로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의 제품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영업이익 전부를 세금으로 내야할 수도

탄소국경세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경제시장인 유럽연합(EU)이 2023년부터 탄소국경세 도입을 예고하면서다. 이미 정치적인 합의는 마무리되었으며 올해 7월 법안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EU의 탄소국경세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1톤당 약 30유로(약 4만원)로 예상된다.

EU가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면 한국 철강제품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 철강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양은 어마어마하다.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철강제품 1톤을 생산할 때마다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약 2톤 정도라 한다.

그렇다 보니 회계법인 EY한영이 최근 발표한 ‘기후변화 규제로 인한 한국수출 영향분석’ 보고서에서도 2023년 한국 철강의 대EU 수출액의 5%가 고스란히 세금으로 지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적시했다.

매출 5%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철강산업은 경쟁이 심해서 남는 게 그리 많지 않다. 최근 글로벌 철강회사의 영업이익률이 약 5%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영업이익 전부를 탄소국경세로 내 노마진 상태가 된다.

물론 모든 철강사가 비슷한 수준의 추가 부담을 지게 되면 제품가격을 올리는 방법으로 약간의 마진을 확보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누군가 이산화탄소 배출없이 철강을 생산하는 수소 환원 공법을 성공시키는 순간 균열이 오게 된다. 실제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은 이미 수소 환원 공정을 이용해 철강을 생산하는 파일럿 공장을 유럽에 건설 중이며 올해 안에 가동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글로벌 기업들의 새로운 표준 ‘RE100’

최근 탄소국경세와 같은 기후변화 규제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기업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한 예로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은 기업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참여를 선언한 기업만 280여곳으로 글로벌 선도 기업들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최근엔 RE100 참여 기업의 협력업체 역시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려야 한다는 방향으로 규범이 확산되고 있다.

RE100은 기후변화로 지구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경이 되는 걸 막는 데 일조하기 위한 자율규범이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벌금을 부과하거나 처벌하지는 않는다. 다만 RE100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RE100 참여 기업과 거래가 끊기는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 소니를 포함한 일본 기업들은 이런 부작용을 피하고자 일본 정부에 2030년까지 국가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전체 에너지의 최소 40%로 대폭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마진 장사보다는 남는 장사가 낫다. 탄소국경세를 포함한 기후변화 정책은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응해야 한다. 한국 수출기업들도 노마진에 허덕이지 않으려면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