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새로운 노동가치의 개척자

채희태/작은숲/1만5000원

코로나19는 안 그래도 부족한 일자리에 찬물을 끼얹었다. 자영업자들까지 줄도산하는 바람에 가족, 친지 중 백수 한 둘 없는 집은 찾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백수를 전처럼 무능력한 소수로 바라볼 수만도 없다. 일단 숫자가 엄청 늘었다. 뿐만 아니다. 나보다 가방끈 길고 스펙 화려한 백수들이 즐비하다. 단지 지금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이들을 문제아로 낙인 찍어도 되는 걸까.

작가의 답은 단언컨대 'No!'다. 백수야말로 새로운 노동의 가치를 찾아나선 개척자이며 시대를 바꾸는 영웅이라고 추켜세운다. 백수들에게도 "너희가 백수인 것은 너희가 아닌 사회 탓이라고, 그러니 당당하라"고 말한다.

그냥 던지는 위로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부제 '코로나 시대, 백수의 사회학'에서 엿보이듯 책은 백수와 백수현상의 사회학적 고찰을 시도했다.

작가의 주장은 이렇다. 우선,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면 인류는 인공지능과 경쟁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목표를 찾아야 한다.

다음, 정보의 폭발적 증가로 인간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더라도 더욱 바빠질 것이다. 고로, 정보 빅뱅의 시대에 새로운 노동의 목표는 여가를 확보하는 것이다. 백수는 인류의 새로운 노동 가치를 개척해가고 있는 첨병이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청년 실업과 백수의 증가가 과연 개인의 문제일까? 4차산업혁명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구조의 변화가 실업자를 양산해내고 있는 시대에 더 이상 백수에게 기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누구든 언제나 백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백수의 새로운 시대적 쓸모를 끄집어내길 우리와 우리사회에 '강추'한다. 백수는 사회구조의 변화로 인해 경제 활동에서 배제된 사람일 뿐이라는 저자의 백수 정의는, 저명한 사회학자를 이 책의 추천사를 쓰고 '삐끼'로까지 참여하게 만들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사용시'로 이름을 떨쳤다. 자신의 시가 뚜렷한 목적성을 지니고 상품에 딸린 사용설명서처럼 "독자의 삶에 사용"되기를 바랐다. '한낱' 백수인 작가가 통찰력있는 사회진단가로 평가받은 이유 또한, 이 책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삶의 형식의 '사용설명서'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으로 보인다.

고상한 삐끼의 권유가 아니어도 책을 읽으면 최소한 백수들에 대한 폭력에는 더이상 가담하지 않을 것 같다. 쓸모가 없다는 치욕과 '쓰레기'라는 몰인정을 백수들에게 가하는 일 말이다. 누구나 언제든 백수가 될 수 있는 시대, 그 시대를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으로서.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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