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내연기관, 환경규제 영향 미미·트렌드 반영 … 성과 따라 인센티브 차별화 필요

문재인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탈내연기관차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각종 규제만으로는 전기·수소차 전환 속도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하고 나섰다. 바로 '한국형 무공해차 전환'(K-EV100이다. 글로벌 이니셔티브인 EV100(2030년까지 100% 전기차 전환)을 벤치마킹한 제도로 이미 해외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에겐 낯설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내일신문은 2회에 걸쳐 기업들의 K-EV100 준비 현황을 살펴보고 실제 집행을 위해서 보완해야 할 점들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K-EV100을 하고 싶어도 현실이 뒷받침 해주지 않는다." K-EV100과 관련한 기업들의 체감도를 압축한 말이다. 해외 기업들 사이에서는 5년 전부터 EV100 이니셔티브 참여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EV100이란 2030년까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운영이나 제품 유통을 위한 차량을 휘발유나 디젤에서 전기차로 100% 전환 등을 목표로 하는 캠페인이다.

K-EV100 역시 이와 비슷한 캠페인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참여를 독려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정부 부처는 합동으로 '미래자동차 확산 및 시장선점 전략'을 발표하면서 K-EV100 도입을 발표한 바 있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2030년 이전까지 보유차량 100%를 무공해차로 전환하는 게 주요 골자다. 환경부는 올해 상반기 내로 연차별 이행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분위기다.

◆기업 63.6% "전기·수소차 전환 고민중" = 내일신문은 2일부터 19일까지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K-EV100 도입 계획 실태 조사'를 최초로 실시했다. 기업들의 참여 의지는 높았지만 한편으론 K-EV100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반응도 있었다. 실제로 이번에는 동참하지 않았지만 설문 조사 응답을 요청한 기업들 중 "K-EV100이 무엇이냐"고 되묻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정부가 전기·수소차 등으로 전환 속도를 앞당기겠다고 의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들은 정부 정책과 관계없이 이미 전기·수소차 전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K-EV100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회사 보유 차량을 전기·수소차로 전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냐'는 질문에 63.6%가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 그칠 뿐 확정된 곳은 드물었다. 대기업 A, B사 관계자들은 "검토만 계속할 뿐 아직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어 설문에도 참여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

전기·수소차 전환 계획 수립 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인프라 확대 속도 30.0% △비용 부담 문제 18.0% △CEO의 결단 14.0% △기존 차량 교체 주기 12.0% △기타 12.0%(복수 응답) 등이다. 반면 경유차 운행 제한 등 강화하는 환경규제가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은 4.0%에 불과했다. 기업들의 탈내연기관차에 대한 의지는 규제로 인한 강제적인 변화가 아니라 세계경제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수순임으로 해석된다.

◆사무실 임대 등 고려해야 할 요소 너무 많아 = 문제는 방법이다. 기업들의 탈내연기관차 의지가 강해도 현실은 여전히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 'K-EV100에 동참하고 싶어도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 1위(복수 응답)는 '차량 운행에 문제가 없을 정도의 충전소 인프라가 확충되어 있지 않다'(33.8%)였다. 이어 △충전 시간 부담이 상당하다 20.6% △전기·수소차 종류가 다양하지 못하다 17.6% 등의 순이었다.

C업체 관계자는 "업무 특성상 차량 운행 장소가 다양한데, 당장 충전이 필요할 때 인근에 충전소가 없을 확률이 높다"며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기업 입장에선 이런 불편을떠안으면서까지 전기차로 전환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호소했다.

D업체 관계자 역시 "충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지만 업무 처리 속도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요소가 해결되지 않으면 전기차 전환은 힘들다"며 "게다가 충전기가 빈번하게 고장나고 수리도 생각만큼 빨리 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는 만큼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업체 관계자는 "아마 상당 업체들이 이런 고민을 할 것 같은데, 사무실을 임대해 쓰는 만큼 향후 달라지는 사업장 상황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며 "충전소 문제 때문에 사무실 선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는 없지 않냐"고 말했다.

◆"회사 및 고객사 부담 전가시 전환 못해" = K-EV100 활성화를 위해서 기업들은 인센티브 강화를 한 목소리로 외쳤다. 환경부는 K-EV100 참여 기업 지원 방안으로 △법인차량 대상 구매보조금 지원 △사업장 내 전기·수소차 충전인프라 설치 지원 등을 한다. K-EV100 예산을 별도로 할당해 참여기업에게 우선 순위를 부여해 직장 주차장 등 사업장에 충전인프라 설치를 지원할 예정이다. 현재 전기차 충전인프라의 경우 기업 대상 별도 예산이 없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것만으론 참여 독려 요인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F업체 관계자는 "무조건 지원만을 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다"며 "K-EV100 지원 효과가 큰 기업들을 평가해 성과에 따라 해당 기업에 정부 보조금을 추가로 지급하는 식의 인센티브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G업체 관계자는 "보조금보다는 법인세 인하 등 보다 직접적으로 효과가 있는 지원책을 강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H업체 관계자는 "최소한 전기·수소차량 도입비용과 운영비용이 현재 화석연료를 사용 중인 차량과 동일수준이 되어야 전환 결정을 할 수 있다"며 "회사 자체 부담이나 고객사 부담으로 단순히 전가할 경우 현실적으로 운영이 불가능한 만큼 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수준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의 '신에너지 전망 2020'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이면 우리나라에서도 스포츠유틸리티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전망치만 바라보고 섣불리 실행에 옮기기에는 부담스럽다. I업체 관계자는 "임원들이 주도가 돼 탈내연기관차 방안을 검토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확실한 리스크 완화 요인이 있어야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 급속충전기를 설치해 운영해야 하는 경우 공공부지에만 들어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며 "올해 도심 인프라 확충을 위해 주유소에 급속충전기 300기를 설치하도록 주유사업자들과 협의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인센티브 추가 확대 부분은 좀더 검토를 해볼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 조사방법 = 'K-EV100 도입 계획 실태 조사'는 이메일과 전화를 통한 설문 조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사 대상 업종으로 물류 및 유통, 금융업 등을 선정했다. 설문 조사는 2일부터 19일까지 이뤄졌다. 60여개 업체들에게 설문 답변을 요청해 40곳의 답변을 받았다. 이 중 중복응답 등의 설문들을 제외해 35곳의 데이터를 냈다.

■ 설문기업 =기아 클로버렌트카 대상 레드캡투어 롯데글로벌로지스 르노삼성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모빌리티코리아 미래에셋대우 BGF리테일 삼보렌트카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신한은행 CJ대한통운 SK이노베이션 오렌터카 OB맥주 우리은행 이마트 NH투자증권 엘에스전선 LG화학 KB국민은행 코리아세븐 판토스 하나렌트카 하나은행 하이트진로 한국투자증권 한진 화성렌트카 현대글로비스 현대오일뱅크 현대자동차 홈플러스 (이상 기업 35곳, 가나다 순)

["탄소중립사회, 무공해차 전환 길을 묻다" 연재기사]

김아영 김병국 김영숙 백만호 범현주 이재호 정석용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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