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뽑은 동장후보, 시장이 임명

2년 임기보장, 예산 등 인센티브 줘

2019년 도입, 올해 9개 동으로 확대

지난해 12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통과로 지방자치가 한 단계 성장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무엇보다 지방자치의 주인인 '주민참여'가 강화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김순은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은 "그동안 지방자치 주체는 주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 머물렀다는 게 아쉬운 점"이라며 "전부개정안의 핵심은 지역주민 중심 지방자치로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실제 자치를 체험할 수 있는 영역인 읍·면·동의 주민자치회 관련조항은 법안에서 빠졌다. 여전히 지방자치의 주인은 주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주민자치회는 이미 전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게다가 동장을 주민추천제로 뽑고 주민총회를 열어 마을 일을 결정하거나 청소년과 청년들이 지자체 정책수립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내일신문은 지역별 주민자치의 모범사례를 발굴, 소개한다. <편집자주>

지난해 12월 29일 개최된 수원시 송죽동장 후보자 토론회 모습. 사진 수원시 제공


"수인선 개통으로 지하철시대 열립니다. 서수원 발전의 중심에 평동이 있습니다. 제 사무관 첫 시작을 지역발전과 함께 한 공직자로 기억되고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김병수 평동장 후보)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동 주민과 함께 좋은 마을을 꿈꾸면 정이 넘치고 화합하는 마을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안순일 평동장 후보)

지난해 12월 29일 수원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권선구 평동장 후보자 토론회의 한 장면이다. 이날 토론회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 따라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됐다. 평동장에 지원한 김병수·안순일 두 후보는 지원동기와 동 운영계획, 주민과의 약속사업을 발표하며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사전에 준비한 10개의 질의서 가운데 3개를 현장에서 뽑아 두 후보의 답변을 듣는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평동 주민추천인단으로 참여한 117명은 이날 수원iTV로 생중계된 토론회를 본 뒤 선거관리위원회 시스템에 접속해 투표를 했다. 투표결과 김병수 후보가 동장대상자로 선출됐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주민추천인단이 뽑은 동장후보를 올해 1월 정기인사에서 동장으로 임용했다.

지난 2019년 6월 25일 평동행정복지센터에서 동장 후보자 토론회가 끝난 뒤 주민추천인단에 참여한 평동 주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 수원시 제공


수원에서 올해 동장 주민추천제를 실시한 곳은 평동·송죽동·인계동·매탄2동 4곳. 4개 동은 지난해 12월 28~29일 동장추천운영위원회 주관으로 '동장 후보자 온라인 토론회 및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동별 투표결과 전제승(송죽동)·김병수(평동)·김광수(인계동)·김철수(매탄2동) 5급 사전 의결자를 동장 대상자로 선출했다. 4개 동 모두 2명이 후보로 등록해 경쟁을 벌였다.

◆행정 연속성·책임성 강화, 주민 만족도 향상 = '동장주민추천제'는 염태영 수원시장의 민선 7기 약속사업이다. 수원시 정책 추진과정에 주민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주민이 추천한 공직자를 동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수원시가 동장 공모에 지원한 후보자를 해당 동에 통보하고, 각 동에서 '동장추천운영위원회' 후보를 추천하면 수원시인사위원회에서 위촉한다. 동장추천운영위는 주민 추천인단을 구성하고 후보자 토론회, 추천인단 투표를 거쳐 최종 대상자를 선발한다. 수원시는 동장주민추천제를 도입한 2019년 7월 평동·행궁동장을, 2020년 1월에는 정자1동·세류2동·매탄1동장을 임용했다.

동장 주민추천제로 임용된 동장은 임기 2년이 보장된다. 특히 동장 주민추천제를 거쳐 임용된 동장에게 인재추천권, 승진·근평 우대, 예산지원 등 인센티브를 준다. 올해도 해당 동에 주민세 환원사업비, 특별사업비 등을 특별 지원할 예정이다.

과거 일부 동장은 인사권자인 단체장의 눈치만 보며 임기를 보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동장주민추천제로 임명된 동장들은 주민들에 대한 책임감이 크다. 김병수 평동장은 "토론회에서 주민화합, 둘레길 명소화, 도시가스 공급 등 숙원사업 해결을 약속했고 연말에 평가를 받게 된다"며 "아무래도 주민들에 대한 책임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직접 선출한 동장이 펴는 행정과 마을 일에 벌써부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평동장 추천인단에 참여했던 서정란씨는 "내 손으로 동장을 뽑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게 됐고, 앞으로 동장이 어떻게 일을 하는 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 같다"고 말했다.

동장 주민추천제에 대해 염태영 수원시장은 "후보자들은 유권자인 주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꼼꼼하게 공약을 준비하고, 득표 활동에도 정성을 기울였다"며 "이러한 과정이 '지역축제이자 마을잔치'로 발전해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동장 선출과정, 마을잔치로 발전하길" = '동장 주민추천제' 도입은 수원시가 처음이 아니다. 앞서 광주 광산구 우산·도산동 주민들이 2017년 동장 주민추천제를 도입했고 세종시 공주시 등도 도입했다. 하지만 수원시가 그동안 구축한 협치기본조례, 시민주권 온라인플랫폼, 주민자치회 등과 '동장 주민추천제'가 결합하면서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다. 행정 최일선인 동에서부터 주민들이 자신의 권한과 역할을 높여나가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김광수 인계동장은 "동장 주민주천제로 동장이 됐지만 '주민자치회'의 운영계획에 따라 주민총회에서 결정된 사업에 시에서 인센티브로 받은 예산을 쓸 계획"이라며 "주민이 선출한 행정전문가로서 주민자치회를 뒷받침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동장은 "현행 제도의 한계로 동장 주민추천제에 머물고 있지만 순천에서 개방형직위를 활용해 일반인을 동장에 선출하는 것처럼 장기적으로는 동장 주민직선제가 실현돼야 진정한 주민자치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동장은 '집행' 위주의 행정에서 벗어나 주민의 눈높이에 맞는 '마을행정가'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민선 7기 시민 약속사업인 동장 주민추천제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 넘어 주민자치 시대로" 연재기사]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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