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삼3 모임' 12개 주민자치회로 확산

외부 민간전문가 활용, 빠른 정착

지난해 12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통과로 지방자치가 한 단계 성장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무엇보다 지방자치의 주인인 '주민참여'가 강화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김순은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은 "그동안 지방자치 주체는 주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 머물렀다는 게 아쉬운 점"이라며 "전부개정안의 핵심은 지역주민 중심 지방자치로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실제 자치를 체험할 수 있는 영역인 읍·면·동의 주민자치회 관련조항은 법안에서 빠졌다. 여전히 지방자치의 주인은 주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주민자치회는 이미 전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게다가 동장을 주민추천제로 뽑고 주민총회를 열어 마을 일을 결정하거나 청소년과 청년들이 지자체 정책수립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내일신문은 지역별 주민자치의 모범사례를 발굴, 소개한다. <편집자주>

대덕구 법1동 주민자치회가 지난해 10월 거리에서 주민총회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대덕구 제공


대전시 대덕구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1000개의 소규모 공론장으로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도전이다.

대덕구 송촌동 주민자치회는 지난해 3명 이상의 주민이 3가지 송촌동 주제로 3회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시작했다. '3삼3 모임'의 출발이다.

5명 이상 사람이 모이기 힘든 코로나19 시대. 대규모로 모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온라인으로 한다 해도 한계는 있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이웃끼리 아니면 처음보는 얼굴이지만 3명 또는 4명이 모여 마을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모아나갔다. 오히려 논의규모가 작다보니 참석자 모두가 발언했고 고민도 훨씬 깊어졌다.

그렇게 100개 모임이 만들어졌다. 360여명의 주민이 참여했고 과정에서 972개의 마을의제가 모아졌다.

대덕구는 올해 송촌동 주민자치회의 '3삼3 모임'을 전 12개 동 주민자치회로 확산하기로 했다. 이른바 '소규모 공론장 와글와글 대덕'이다. 목표는 1000개의 소규모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다. 단순계산으로 송촌동 사례에 비춰 1만개의 마을의제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온다.

12개 동 주민자치회는 5월 대대적으로 소규모 공론장을 만들고 마을의제를 모을 예정이다. 이렇게 모아진 마을의제를 6월 워크숍 등을 통해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7월엔 온·오프라인 주민총회를 열어 내년 주민참여예산에 참여할 사업을 최종 선정할 계획이다.

◆자치회 구성, 공개·민주적으로 = 올해 대규모 '와글와글 대덕'을 진행하고 나면 대덕구 주민자치회 시스템은 한결 굳건해질 전망이다.

대덕구는 전국 지자체의 모델로 떠올랐다. 지난해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제도정책 분야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사례발표 지자체로 선정됐다. 대덕구는 앞선 지자체의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안착한 경우다.

대덕구는 우선 자치일꾼을 세우고 만드는 데 집중했다. 대덕구는 2019년 일반임기제 공무원 1명을 채용하고 12개 동별로 민간전문가로 자치지원관 12명을 배치했다. 자치지원관엔 마을공동체 복지 협동조합 등에서 활동한 다양한 민간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들이 주민자치회 초기 구성부터 운영까지 지원을 했다.

대덕구 관계자는 "자치지원관은 처음엔 예산낭비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제도가 빠르게 안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민간 출신이 가진 탄력성으로 주민과 행정간의 소통을 원활히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또 대덕구 공동지원센터에 주민자치학교와 주민역량강화 프로그램을 개발·지원하는 자치팀을 설치·운영했다.

마을활동가와 자치인력 확대를 위해 마을자치활동가학교도 운영했다. 2020년 한해 동안 10회에 걸쳐 241명이 교육을 받았다.

주민자치회 구성은 최대한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주민자치회 위원은 다양성을 위해 공개모집했다. 이렇게 모집된 주민은 6시간 주민자치교육을 이수한 후 위원 지원 자격을 얻게 된다. 2020년 상반기에만 695명이 교육을 받았다. 이후 추첨위원회의 공개추첨을 통해 위원 위촉이 이뤄진다. 추첨위원회는 동장이나 자생단체 회장 등 지역의 공신력 있는 인사들로 구성했다. 2020년 441명이 주민자치회 위원으로 위촉됐다.

주민자치회 회장과 부회장 선출은 정견발표 후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했다. 동별 간사도 인사위원회를 구성해 공개 채용했다.

분과는 주민자치회의 튼튼한 기반이며 손발이다. 현재 12개 동에 41개 분과가 활동 중이다. 자치운영분과 교육청소년분과 문화예술분과 건강복지분과 안전환경분과 등 동별로 3∼5개 분과가 있다.

대덕구 주민자치회 운영절차도 일목요연하다. 소규모 공론장 등을 통해 마을의제를 모으고 이를 워크숍 등을 통해 정리한다. 이후 주민총회를 거쳐 최종안을 결정한다. 지난해 12개 동에 온라인 주민투표 등을 도입해 참가인원은 전년 1146명에서 1만3340명으로 급증했다. 이렇게 결정한 최종안은 대전시나 구의 주민참여예산과 연계 수행하게 된다.

◆"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게 민주주의 핵심" = 대전시 대덕구는 산업단지와 아파트촌이 결합된 지역이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통계에 따르면 인구는 3월 말 기준으로 17만5572명이다. 대전시에선 원도심으로 분류돼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신도심으로 분류되는 서·유성구로 인구가 꾸준히 유출되고 있으며 인접한 세종시도 구심력을 갈수록 높이고 있다. 기업유치나 개발 등에만 기대서는 인구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

결국 주민 삶의 질을 얼마나 높이느냐에 경쟁력이 달렸다. 이 때문에 행정조직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주민 스스로 나서 지역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대덕구 주민자치회가 시작되고 빠른 정착을 보인 배경이다.

주민자치회는 수도권 지자체 등에 비해 늦었지만 빠르게 뒤쫓았다. 2018년 12월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동 행정사무에 주민자치 지원업무를 추가하는 등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2019년 1단계로 송촌동 중리동 덕암동 3개 동에서 주민자치회를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 12개 동 전체에서 주민자치회가 출범했다. 대전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다. 자치지원관 등은 대전시에서 유일했다.

박정현 대덕구청장은 "주민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는 게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며 "주민자치회는 그런 의미에서 촛불 이후 우리 민주주의가 갈 길"이라고 말했다. 박 구청장은 "당장은 어렵겠지만 10여년 정도 지나면 동 행정이 담당하는 많은 분야는 주민자치회가 맡고 자치구에서 파견한 공무원은 이를 지원하는 형태로 바뀔 것으로 본다"며 "그래야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 넘어 주민자치 시대로" 연재기사]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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