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분기 3000억달러 투자유치 … 이코노미스트지 "소비자는 혜택, 투자자는 조심"

'카우보이 벤처스'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한 벤처자본 투자자 에일린 리는 2013년 '유니콘'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유럽 중세의 동물지에 흔히 나오는 전설적인 동물로, 이마에 한개의 뿔이 달렸다. 비상장 민간기업으로서 10억달러 이상 가치를 인정 받는 스타트업이 흔치 않다는 의미에서 그는 유니콘이라는 이름을 차용했다.

하지만 오늘날 유니콘기업은 흔해졌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 소비자들 입장에선 이런 흐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유니콘들이 출시하는 새로운 기술의 상품과 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다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는 "유니콘 투자열풍에 뛰어드는 투자자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기술을 과장하는 스타트업, 유니콘을 둘러싼 정치적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계 유니콘기업들은 8년 전 12개에서 현재 750개를 넘었다. 총가치는 2조4000억달러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기술관련 스타트업들은 전세계적으로 약 3000억달러를 모았다. 지난해 전체기간과 맞먹는 수준이다.

데이터제공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스타트업 투자열풍을 기반으로 지난 2분기(4~6월) 136개의 유니콘기업이 새로 탄생했다. 분기 기록으론 최고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억달러 넘게 모은 투자유치회 숫자는 3배 늘어 390회가 됐다. 이런 열풍에 힘입어 초창기 유니콘 34개 중 4개를 제외하고는 10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최근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는 기업들은 다양해졌다. 소비자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와 같은 온라인 장터 스타일을 벗어났다. 요즘 스타트업들은 정교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개발중이다. 그리고 틈새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지난 2분기 벤처 투자금의 약 25%는 금융기술 스타트업에 쏠렸다. 또 인공지능과 디지털의료, 사이버보안 분야 스타트업들에도 많은 투자금이 몰렸다.

투자자들의 넉넉한 자금을 받는 스타트업들의 국적 역시 다양해졌다. 여전히 미국과 중국 스타트업이 투자유치 리그의 상위를 지키고 있지만, 미중 이외 국가의 비중은 2016년 25%에서 지난 2분기 40%로 늘었다.

이달 인도 전자상거래 스타트업인 '플립카트'는 36억달러 투자금을 유치해 총가치를 380억달러로 늘렸다. 동남아시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은 현재 400억달러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올해 중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기를 희망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스타트업계로 물밀듯 쏟아지는 투자금은 두가지 요소로 설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요소는 스타트업 붐 초기에 투자한 벤처자본가들이 적극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디지털 열풍에 투자하고자 열망하는 투자자들은 기술 관련 스타트업 지분을 사들이려 애쓰고 있다. 때문에 기존 주주는 최고액으로 지분을 넘길 수 있다.

올해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 등을 통한 투자금회수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2배 늘어 거의 3000회에 육박한다. 이 수익금은 다시 새로운 벤처자본 펀드로 흘러들어간다. 올해 출시된 벤처펀드에 미국에서만 740억달러의 투자금이 쏟아졌다. 한해 최고기록이었던 2020년의 810억달러를 절반의 기간만으로 따라잡았다.

벤처투자자들은 넘치는 돈을 투자할 곳을 찾느라 안달이다. 스타트업에 대한 공세적인 투자로 유명한 뉴욕 소재 투자기업 '타이거글로벌'은 지난 4~6월 매 영업일마다 평균 1.3건을 거래했다.

스타트업 가치가 치솟는 두번째 이유는 투자자들 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타트업 시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모태인 팰로앨토의 샌드힐로드에 있는 벤처투자자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연기금과 국부펀드 등 신참자들이 기술관련 스타트업 투자에 뛰어들기 시작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지난 2분기 이같은 '비전통' 투자자들은 미국 스타트업 투자시장에서 1800건에 육박하는 거래에 참여해 57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많은 투자자들은 벤처업계 외부에서 시험 삼아 투자한 이들이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다. 데이터제공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첫번째 투자유치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얻은 연간 수익률은 평균 30%에 달했다. 이는 베테랑 벤처투자자들의 평균 수익률 10~15%의 두배 이상이다.

하지만 마냥 장밋빛만은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스타트업 타이틀을 달고 몸값을 높였다가 사업모델이 취약해 고꾸라진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차량공유 스타트업 '우버'와 '리프트'는 높은 기대감 속에 기업공개(IPO)를 했지만 이후 주가가 크게 하락했고 사무실 공유기업 위워크는 아예 상장도 못했다. 최근 상장한 많은 유니콘들은 계속 현금을 소진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 추산에 따르면, 2021년 상장한 스타트업들은 도합 250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스타트업들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건 과거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일단 초기 스타트업들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기업들도 재무성과를 공개하지 않는다. 또 앞서 존재한 스타트업들로부터 교훈을 얻기도 힘들다. 초기 스타트업들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성장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승자독식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요즘의 많은 투자자들은 진짜 독특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에 투자하면서 타이밍이 되면 신속히 매각해 높은 수익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장기투자가 보다 지속가능한 전략일 수 있다. 문제는 해당 기업의 기술이 시장에서 적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비전문적 투자자들이 기술의 적중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특히 시제품 수준에 약간의 기능만 더해 상품을 내놓는 경우라면 더더욱 판단하기 어렵다. 수소전기차 스타트업 '니콜라'와 전기트럭 스타트업 '로즈타운'은 기업인수목적회사(SPACs)에 역으로 합병되는 방식으로 2020년 상장했다. 하지만 두 기업은 기술의 실현 가능성을 부풀린 혐의로 미 당국의 조사를 받는 형편이다.

스타트업 투자의 또 다른 리스크는 정치쪽에서 올 수 있다. 전세계 규제당국들은 기술기업의 몸집과 권력이 너무 커졌다는 점, 금융이나 보건의료처럼 규제가 필수적인 시장에 발을 디딘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최근 중국 당국은 기술기업 규제의 일환으로 차량공유기업 디디추싱의 영업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디디추싱의 애플리케이션을 중국 앱장터에서 삭제토록 지시했다. 뉴욕증시 기업공개를 통해 680억달러를 모은 지 이틀 뒤였다. 사용자 데이터에 대한 관리소홀이 이유였다. 중국정부의 연이은 조치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멈칫하고 있다. 올해 1, 2분기 중국 스타트업 투자는 지난해 4분기보다 줄어들었다.

미국의 경우 증권감독위원회가 암호화폐 관련 조사를 시작했다. 지난해 비트코인의 대대적인 상승러시를 통해 많은 투자자들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눈길을 돌렸다. 그 덕에 코인베이스는 올해 4월 상장 직후 주가가 급등했다. 하지만 현재 시가총액은 절정 대비 절반으로 줄어든 560억달러에 불과하다. 이런 사례들은 스타트업, 유니콘 투자에 신중해야 할 이유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다르다. 스타트업과 유니콘의 치열한 경쟁을 환영한다. 벤처투자는 대개 채권이 아니라 주식과 관련돼 있다. 때문에 위워크나 디디추싱의 사례가 금융시스템에 별다른 리스크를 주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벤처자본이 손실을 내는 스타트업들에 자금을 대는 한, 스타트업과 유니콘이 내놓는 기발한 상품과 서비스는 소비자들의 효용을 늘릴 수 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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