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행위자→피해자 순

기본절차 무시, 면피용 의혹

"지시 이행하느라 절차 어겨"

경북도 감사관실이 직장내 괴롭힘 고충 신청건을 조사하면서 기본적인 조사절차를 지키지 않아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9일 경북도에 따르면 감사관실 공직감찰팀은 지난달 11일 이철우 지사의 지시에 따라 직장내 괴롭힘 고충내용을 조사했다.

이 지사는 여직원 A씨가 지난 4월말 직장 상사의 성희롱과 괴롭힘 때문에 병가를 내고 휴직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이 지사는 당시 담당국장, 감사관 등을 불러 "성희롱과 갑질 의혹에 대해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에 따른 감사관실 조사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감사관실이 공개한 조사경과에 따르면 공직감찰팀은 조사 착수 직후 고충을 호소한 A씨의 담당팀장을 통해 A씨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며 지난달 16일 관련자와 주변인부터 조사했다. 이날은 A씨가 전문가 상담 등을 거쳐 도에 정식으로 고충신청서를 접수한 날이다. 감사관실은 또 지난달 21일 가해 행위자로 지목된 과장 B씨를 상대로 문답조사도 실시했다. A씨가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상세하게 파악되지도 않았는데 행위자로 의심되는 B씨를 만나 문답조사를 한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조사매뉴얼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 조사를 하지 않아 구체적인 피해내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B씨를 상대로 어떤 내용을 조사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감사관실은 또 같은 달 23일과 24일에는 해당 부서 직원 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위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행위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관실은 정작 가장 우선됐어야 할 피해자 A씨에 대한 면담을 지난달 28일에서야 진행했다.

결국 감사관실은 '주변인 조사→행위자 문답→직원 설문→피해자 면담' 등의 잘못된 순서로 1개월간의 조사를 벌였고, 결과는 '과장의 통상적인 업무지시로 용인될 부분이어서 직장내 괴롭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마무리했다. 감사관실은 지난 20일 "경북도 공공분야 갑질근절 추진계획 등에 따라 조사한 결과 직장내 괴롭힘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A씨에게 통보했다.

도 직원들은 조사결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A씨와 같은 과의 한 직원은 "B과장은 부임 전후 1개월여 동안 A씨에게 과도할 정도로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했으나 A씨가 과장과 거리를 두려고 하자 갑자기 돌변해 윽박지르고 과도하게 업무지시를 하는 방법으로 괴롭혔다"며 "담당 국장과 인사팀, 노동조합 등과 고충상담 직후에도 최소한의 분리조치도 이뤄지지 않아 A씨가 스스로 병가를 내고 분리를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 대해 전문가들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봤다. 한 상담전문가는 "고용노동부 지침을 무시했으며 피해자 보호 관점에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며 "직접증거가 부족하면 피해자와 참고인 진술, 치료 및 상담기록 등도 증거로 채택해야 했는데 경북도의 조사는 기본적인 직장내 갑질 조사 대응매뉴얼에 어긋났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경북도 감사관실 관계자는 "조사매뉴얼이 없었고 도지사 지시사항을 급하게 처리하는 과정에 조사절차가 지켜지지 않았으며, 2차피해 방지노력도 부족했다"며 "성희롱과 직장내 갑질 등에 대한 조사체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해명했다.

한편 피해자 A씨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B과장이 과도한 전화연락과 장시간의 통화, 식사자리 참석강요, 회의 중 사적인 문자발송, 업무와 무관한 출장요구 등을 하고, 심야 업무지시 등을 일삼자 4월말 2개월 병가를 내고 지난 6월초 고충 신청서를 경북도에 제출했다.

경북도는 이 건 말고도 앞서 A씨의 성희롱 고충건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불인정 처리한 바 있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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