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환 서강대 명예교수 정치외교학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Alice's Adventure in Wonderland, 흔히들 줄여서 Alice in Wonderland라고 부르는 동화책의 영문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그 번역이 조금은 '이상'하다. Wonder는 이상함보다는 경이로움, 놀라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는 뜻에 가깝다. 경이롭고 놀라우면서도 조금은 이상한, 그래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나라가 바로 싱가포르다.

싱가포르가 경이롭고 놀라운 까닭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2차대전 종전 직후 도시 전체가 거대한 슬럼(빈민가) 에 불과했던 이 도시국가는 21세기에 들어 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로 변모했다. 게다가 선진국의 경험이 보여주듯 경제수준이 어느정도 올라서면 대개 성장율이 떨어지는 게 정상이지만 싱가포르의 성장세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또한 경제가 발전하면 정치가 민주화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싱가포르의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는 흔들림 없이 굳건하다. 정부를 들여다보면 '세상에 이렇게 똑똑하고 깨끗한 정부가 싱가포르 말고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를 움직이는 정치인과 관료, 공무원들은 유능하고, 정부 제도와 정책은 합리적이며, 절차는 투명하고 공정하다. 이게 정말인지,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2002~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했을 때, 새로운 전염병에 무방비 상태였던 싱가포르는 중국, 홍콩, 캐나다에 이어 세계 네번째로 많은 감염자(238명)와 사망자(33명)를 기록해 큰 충격과 아픔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감염자가 나온 주거단지들을 통째로 봉쇄(록다운)하는 조치까지 취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고작 4명이 감염되었고 사망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후 싱가포르 정부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대대적인 연구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그 결과 정확하게 10년 뒤 치명적인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가 출현했을 때 싱가포르는 피해가 전무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중동국가들을 뺀 모든 다른 나라의 감염자와 사망자 수를 합한 것보다 더 큰 피해(감염 186명, 사망 36명)를 입었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사스 무방비로 혹독한 대가 치러

싱가포르는 8월 말까지 6만7620명이 감염되어 55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 총인구에 대입하면 60여만명이 감염되어 500명이 사망한 셈인데, 이는 싱가포르가 우리에 비해 1.2배 더 감염되었으나 사망까지 이른 자는 우리의 1/5 수준에 불과한 수치다. 감염자 수는 검사빈도와 관계가 있으니, 결국 한국은 싱가포르보다 5배나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는 말이다. 싱가포르는 지난 8월 10일부터 접종센터를 방문하면 누구라도 화이자접종을 받을 수 있다. 8월 29일에는 세계 최초로 접종완료자가 총인구의 80%를 넘었다. 2차접종자 수가 이제 겨우 29%를 넘어서고, 백신 종류와 확보를 둘러싸고 논란과 불만이 끊이지 않는 우리에겐 먼 나라 얘기로만 들린다.

싱가포르를 칭찬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등장하는 반박 논리는 두가지다. 그 하나는 싱가포르는 조그만 도시국가라서 통제가 용이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나 복지는 잘할지 몰라도 정치는 독재를 한다는 비판이다.

첫째 입장은 이른바 싱가포르 예외주의와 맥이 닿아 있다. 싱가포르의 치적은 국가나 국민이 잘해서가 아니라, 놓여있는 조건과 둘러싸인 환경이 특별히 호의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논리로 싱가포르가 이룬 경이로운 성과들을 얼마나 깎아내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코로나19와 같은 세계적 유행병 예방과 대처를 설명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

최소한 코로나19 같은 초국가적 전염병에 관한 한, 싱가포르는 오히려 불리하고 위험한 조건과 환경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는 출입국이 매우 자유로운 나라로 일년 여행객이 1800만명이다. 우리보다 50% 많다. 인구대비 12배 많은 외국인과 접촉한다. 또 싱가포르 인구의 70%가 중국계라 특히 중국과 왕래가 빈번하다. 총인구의 20%가 외국인이고, 그중 아시아인은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남아시아와 서아시아에서도 이주한 사람들이다. 싱가포르가 도시국가라는 점도 유행병 저지에 유리할 게 없다. 오히려 방역에는 '예외적으로 나쁜' 여건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둘째 싱가포르는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비판이다. 필자는 싱가포르가 권위주의 체제라는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언론과 방송을 직접소유를 통해 독점, 통제하고, 선거구와 선거제도를 복잡하게 조작해 여당인 인민행동당의 집권을 영구화하고 있다. 하지만 권위주의 체제가 민주체제에 비해 사회적 거리두기나 개인정보 공개 등 기본권을 더 효과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또 코로나19라는 비상상황을 핑계로 민주선거로 당선된 적잖은 지도자들이 권위주의적 행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보면 싱가포르 정부와 지도자가 그들보다 정말 더 권위주의적인지도 따져 볼 일이다. 코로나19 시대에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의 차이가 종이 한 장 두께에 불과해 보인다.

결국 싱가포르가 이룩한 경이로운 성과들은 정부와 국민의 지혜로운 선택으로 보아야 한다. 과거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등 신대륙으로 이주한 유럽인들처럼, 싱가포르로 이주한 중국인과 말레이인, 인도인들은 빈곤과 기아, 종교적 독선, 국가와 절대군주의 전횡으로부터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이다. 싱가포르인들도 국가나 남에게 의존하기보다 개인적 노력, 자유로운 경제활동, 경쟁적 시장을 중시한다. 싱가포르 정부 역시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제한한다. 국민과 국가가 모두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며 업적을 중시한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실질적인 복지가 가장 잘 되어 있는 나라이지만, 사회주의나 이념을 들먹이지 않는다. 많은 국영기업이 있고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지만, 시장경제의 작동을 방해하거나 위협하는 선을 넘지는 않는다. 중국계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이들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크긴 하지만, 싱가포르는 엄연한 다민족 다문화 국가이다. 국가(國歌)엔 '싱가포르의 성공'이 '숭고한 이념'이고 이를 향해 '싱가포르여 전진하라'라는 대목이 있다. 대부분 나라에서 흔히 등장하는 평등 평화 자유 민주주의 인권 민족 하느님 역사 등의 절대적, 종교적, 이념적 가치를 드러내는 무거운 의미의 단어를 찾을 수 없다.

싱가포르는 역사가 짧다. 길게는 스탬퍼드 래플즈경이 싱가포르에 해협식민지를 세운 지 200년, 짧게는 말레이시아연방으로부터 탈퇴해 독립국가를 선포한 지 55년밖에 되지 않는다. 싱가포르의 '성공'을 보면 이들에게 짧은 역사는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작용했다. 지켜야 할 유산도 많지 않고 청산해야 할 빚도 없으며 정리해야 할 관계가 없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 건국정신과 싱가포르인들의 철저한 현실주의가 성공을 향해 전진하는 데 방해가 되는 찌꺼기들을 말끔히 씻어버렸을 것이다.

성공 비결은 '디테일'에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도 많다. 앞에서 인용한 국가는 모든 국민이 쓰는 영어나 70% 국민이 사용하는 중국어가 아닌 말레이어로 불린다. 말레이인은 총인구의 15%가 채 안된다. 평화로운 아세안에 소속된 싱가포르가 지출하는 국방예산을 보면, 1인당 국방비지출이 우리나라의 3배나 되고, 심지어 전쟁 중인 이스라엘보다도 많다. 선거제도는 왜곡됐어도 선거에서 선택은 자유롭다. 많을 때는 80%, 적을 때도 60% 유권자가 권위주의 여당을 선택한다.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권위주의 국가다. 성공 비결은 바로 이처럼 '좀 이상한' 셀 수 없이 많은 디테일에 있다. 싱가포르 퍼즐을 제대로 맞추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조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