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도서관학 운동' 출간 "미·유럽 사서들, 아프가니스탄 전쟁 반대 … 우리나라 문헌정보학, 지역사회와 이용자 중심 학문돼야"

"2018년 미국도서관협회(ALA) 연차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연차대회 현장에서 ALA는 '난민분리 정책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어떻게 도서관이 대통령 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을 연차대회에서 발표할 수 있을까 놀라웠어요."

사진 이의종

이상복 대진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당시 짐 닐 ALA 협회장에게 어떻게 이 성명이 나오지 됐는지 질문했다.

짐 닐 ALA 협회장은 "도서관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원탁(Round Table on Social Responsibility of Libraries, SRRT), 라틴어를 쓰는 도서관 이용자들의 모임, 어린이단체, 남부시민권단체 등이 ALA에 강력하게 주장했다"면서 "ALA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민주주의와 정의 평화, 그리고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사회적 책임이란 지역사회 이용자들에 대한 도서관의 사회적 책임을 뜻한다. 이후, 이 교수는 한국에 돌아와 도서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SRRT가 시작한 1969년부터 현재까지 50여년 동안 펴낸 뉴스레터, 진보사서조합(Progressive Librarians Guild, PLG)이 펴내는 학술지 PL(Progressive Librarians)을 1990년부터 최근호까지 살폈다. 그렇게 연구한 내용을 '진보 도서관학 운동'에 담았다.

이상복/한국도서관협회/2만8000원

◆흑인·여성·소수자에 대한 관심 = 진보 도서관 운동은 1930년대 처음 시작된다. 1920년대 미국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그 부는 백인들에게 돌아갔다. 미국은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여 노동력을 사용했지만 이들은 오히려 극빈자로 전락해갔다.

이런 사회적 문제 속에서 ALA 내 진보사서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ALA는 처음엔 진보사서 중심 협회는 아니었다. 전세계적으로 쓰이는 듀이의 도서관 분류표를 보면 영·미 중심이며 흑인 소수자 빈곤에 대한 내용은 매우 취약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흑인 노예 해방 이후 세대, 라틴 아메리카 이민자 등이 ALA에 들어왔고 진보적 목소리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1960년대 호황이 일어난 가운데 부의 불평등, 인종차별, 여성차별은 갈수록 심해졌고 이에 대응해 프랑스 파리에서 68혁명이 일어났다.

이 영향으로 다시 한번 ALA 내 진보사서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 교수는 "도서관이 지역사회 공동체의 핵심기관으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운동이 강하게 일어났다"면서 "보수적 기득권을 가진 출판사에 반대하는 대안 출판이 시작되고 진보사서들은 ALA를 개혁해야 한다며 1969년 SRRT를 결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SRRT는 ALA 내에 속한 조직으로 다양한 사회 현안에 대한 결의안을 ALA가 채택하도록 활동하며 관련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또 이를 실제 도서관 서비스에 적용한다. 2020년 기준 SRRT 내에 페미니스트 TF, 국제책임 TF, 기아 노숙자 그리고 빈곤 TF 등이 속해있다.

◆도서관권리선언 vs 사회적 책임 = 진보사서들이 SRRT를 결정하자 ALA 내 보수사서들은 이들을 견제하고 나섰다. 68혁명의 영향으로 진보사서들의 활동이 번져나가자 보수사서들은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고 '비도서관 현안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보사서들은 '도서관은 지역사회에 있고 지역사회 주민들을 교육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 '도서관의 장서나 사서는 이용자 공동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며 팽팽하게 맞섰다.

당시 보수사서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이는 버닝하우젠 ALA 지적자유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그는 도서관권리선언을 만들어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ALA의 도서관권리선언에는 '인종 성별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도서관은 모든 관점의 책을 이용자에게 이용시켜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보수사서들은 진보사서들이 도서관을 장악했을 때, 도서관에서 보수적 입장의 책들은 없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ALA가 정치집단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ALA 측 법률단체에서는 ALA가 사회적 현안에 관심을 가지면 국가로부터 받는 세금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도서관 예산은 한정돼 있어 모든 책을 다 꽂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사서들에게는 도서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 진보사서들은 '도서관권리선언과 사회적 책임은 양립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와 같은 대립은 라이브러리 저널(Library Journal) 등 학술지에서까지 이어지게 되며 '버닝하우젠 논쟁'으로 알려진다.

◆'도서관은 중립적이어야 할까' = 이후, 진보사서와 보수사서들이 대립하는 몇몇 사건들이 발생했다.

그 중 하나는 게이와 레즈비언 TF 활동이다. 1992년 아메리칸 라이브러리즈(American Libraries) 표지에는 '게이와 레즈비언 TF'라는 현수막을 든 TF 회원들의 시위 사진이 실렸다.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던 상황으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이에 거세게 항의했다.

다음으로 정치적 중립이 흔들린 사건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발생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사서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에 유럽 사서들까지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미 의회와 행정부에 전달돼 아들 부시 행정부를 압박했다.

이 교수는 "이렇게 되자 ALA는 '하나의 목소리로 말하자'는 정책을 발표한다. 그리고 당시 SRRT가 발표하고자 했던 성명은 ALA 총회에서 채택되지 못했다"면서 "이런 식으로 ALA는 SRRT의 활동을 번번이 비토했다"고 말했다.

이후, 이스라엘 가자기구 점령 철회 결의안이 ALA 총회에서 거부를 당하자 SRRT는 ALA와 타협을 시도한다. 결의안에 도서관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시키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한 예산을 자국 내 도서관 건립에 사용했다면 훨씬 더 많은 도서관을 지었을 것' 등의 내용을 결의안에 포함했다.

이후 2018년 ALA에서 보수·진보사서들이 모여 '도서관은 중립적이어야 할까'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는데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에서 서로의 주장을 말하며 열린 결론을 냈다.

미국에는 1990년 결성된 PLG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PLG는 ALA 외부에서 보다 자유롭게 활동하는 진보사서들의 모임이다. PLG를 조직한 로젠버그 행동주의 사서는 진보사서국제연합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진보사서국제연합에 16개 국가의 사서들이 함께 하고 있는데 미국 영국 스웨덴 오스트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일본 등이다. 일본은 반핵 사서들의 모임이 활동하고 있다"면서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진보사서들, 활동의 장 필요 =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진보사서들의 활동이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군사독재 정권에서 우리나라 사서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집회 국면에서도 일부 사서들이 집회는 했지만 한국도서관협회 차원에서 성명을 발표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사서들이 협회에 들어와 역동적인 활동을 하고 협회는 이들을 위한 장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면서 "ALA의 경우 진보사서들이 ALA를 비판하고 견제하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는데 한국도서관협회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도 큰 틀에서 진보사서라 할 만한 이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교수는 "앞으로 진보 도서관 모임이 만들어지고 사서들이 활동하게 되면 국제적으로도 활동이 알려질 것"이라면서 "지금은 우리나라 진보 도서관 운동의 태동기"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도서관과 문헌정보학에 대한 우려와 함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문헌정보학은 이대로 가면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면서 "미국식 정보학이 다른 학문과 우위를 겨루다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또 전통적으로 문헌정보학의 핵심으로 생각돼온 분류와 목록이 자동화되면 도서관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도서관이 지역사회 공동체를 살리는 핵심 역할을 해야 하며 사서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회 현안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이에 따라 도서관학은 기능 기술 중심의 학문에서 지역사회와 이용자 중심의 학문으로 변화해야 한다. 지역사회와 도서관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현안으로 관심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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