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유엔총회 외교전 … 코로나 극복·기후위기 대응논의 주도

종전선언 카드로 비핵화 협상 불씨 … 관건은 북한·미국 호응 여부

문재인 대통령이 추석 명절기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 참석해 활발한 외교전을 펼쳤다. 문 대통령은 '지속가능발전목표 고위급 회의(SDG Moment)'와 유엔 총회 연설, 영국·베트남·슬로베니아와의 정상회담 등의 일정을 소화하며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또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며 임기 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한 불씨를 살리는 데에도 공을 기울였다.
한미 유해 상호 인수식│22일(현지시각) 미국 히캄 공군기지 19번 격납고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가운데 한미 유해 상호 인수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BTS와 나란히 유엔 무대에 = 문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방탄소년단(BTS)과 함께 SDG모멘트에 참석하는 것으로 뉴욕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SDG는 2015년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인류의 2016~2030년 공동비전으로 빈곤과 기아 종식, 국가간 불평등 완화, 기후변화 대응 등을 담고 있다. 유엔은 지난해 2030년 SDG 달성을 위한 '행동의 10년' 원년으로 발표하고 고위급 회의인 SDG모멘트를 연례적으로 열기로 한 바 있다. 올해 문 대통령은 국가 정상으로는 유일하게 초청을 받아 대표발언을 했고, BTS도 청년과 미래세대 대표로 초청을 받아 연설과 영상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문 대통령과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돌그룹 BTS가 나란히 유엔 무대에 오른 것은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SDG모멘트 연설에서 "포용적 미래를 향한 인류의 발걸음은 코로나로 인해 지체됐지만 역설적으로 그 목표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일깨워줬다"며 "단지 위기 극복을 넘어서서 '보다 나은 회복과 재건'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변화, 지속가능한 발전 등 글로벌 도전 과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코로나 백신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평한 접근과 배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 활용 등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삶과 생각의 영역이 지구 전체로 확장돼 '지구공동체 시대'가 탄생했다고 지적하면서 국제사회의 포용과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지구공동체의 당면과제로 코로나 위기 극복과 지속가능발전, 기후위기 대응을 꼽으면서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에 적극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유엔 총회기간 중 BTS와 함께 미국 3대 지상파 방송사 중 하나인 ABC와 인터뷰를 가져 눈길을 끌었다. 유엔총회 참석 목적과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협력 방안 등을 주제로 한 인터뷰는 24일 '굿모닝 아메리카'와 25일 새벽 '나이트라인' 등을 통해 미국 전역에 방영된다.

◆백신외교도 활발 = 문 대통령은 유엔 총회를 계기로 백신 외교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문 대통령은 앨버트 불라 화이자 회장과 면담을 갖고 내년도 코로나 백신의 순조로운 추가 도입과 조기 공급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부스터샷과 접종 연령 확대로 최대한 계약 물량을 조기에 공급받는 것이 필요하다"며 조기 공급을 요청했고 블라 회장은 "요청사항을 유념하고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또 "화이자의 우수한 백신 개발 능력과 한국 생산 역량이 결합한다면 전 세계에 더 많은 백신을 공급해 개도국까지 접종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에서 화이자 백신을 위탁생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백신협력 협약 체결식에도 참석했다. 이번 협약 체결식은 지난 5월 문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을 구현하기 위한 첫 번째 행사로 이 자리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백신 원부자재 생산업체인 싸이바타는 2022~2024년 한국에 525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영국과 베트남 정상과 만나서도 백신 공급·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영국이 가진 코로나 백신을 '교환' 방식으로 국내에 들여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25일부터 mRNA 백신 100만도스(50만명분)가 순차적으로 공급될 것으로 기대된다.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에게는 10월 중에 100만회분 이상의 코로나 백신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국내 백신 1차 접종률이 70%를 넘어서면서 생긴 여력을 주요국과의 와교관계를 강화하는데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과 푹 주석은 내년 한·베트남 수교 3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를 격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종전선언" =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며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종전선언'이야 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주실 것을 다시한번 촉구한다"고 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화상으로 열린 유엔총회에서도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를 여는 문"이라며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한 바 있다. 지난해 다소 원론적인 수준이었다면 올해는 종전선언의 주체를 좀 더 구체화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다시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든 것은 임기를 8개월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비핵화 협상의 교착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분위기를 반전시킬 극적인 계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은) 북한과 미국 간에 비핵화에 이를 수 있는 맨 첫 단계 신뢰구축"이라며 "비핵화에 이르는 여러 단계들을 추동해내는 모멘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건은 북한과 미국이 종전선언 제안에 얼마나 호응하느냐인데 현재로서는 전망이 밝지 않다.

홍 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종전선언에 화답하고 나선다면야 북한이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그동안 종전선언에 소극적이었던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각) 하와이 호놀룰루 히캄 공군기지에서 열린 한미 유해 상호인수식을 주관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 6구를 미국으로 송환하고 하와이에서 봉환을 기다리는 국군전사자 유해 68구를 국내로 모시기 위한 행사다.

문 대통령은 인수식을 마친 뒤 신원이 확인된 고 김석주 일병, 고 정환조 일병의 유해를 대통령 전용기에 모시고 귀국길에 오른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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