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주자 고노, 근본적 개혁안 파장 … 탈원전도 적극적, 외교안보는 모두 강경

자민당 총재선거로 본 일본사회 당면한 과제

일본 집권여당인 자민당 총재 선거 열기가 뜨겁다. 지난해 스가 총리가 당선될 때는 승자가 뻔한 데다 아베 전 총리의 1년 잔여 임기를 뽑는 선거여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과 대비된다.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이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선두를 달리는 것으로 분석되는 가운데, 결선투표 가능성으로 최종 승자를 점치기 어려워 흥미를 더하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집권당 대표가 곧 행정부 수반인 총리대신 자리에 오른다. 이달 29일 자민당 총재가 선출되면, 다음달 4일쯤 의회에서 새 총리를 뽑는다. 올해 11월 예정된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어서 신임 총재는 향후 3년간 총리직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후보간 정책 논쟁은 새 내각의 국정운영 기조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일본사회의 과제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초고령사회 일본, 용돈연금 대안 부재

고노 후보는 지난 19일 후지TV 주최 토론회에서 기초연금의 재원을 소비세를 통해 조달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나머지 세 후보는 즉각 반박했다. 현재도 기초연금 재원의 절반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상황에서 전부 세금으로 전환하면 재정부담이 12조엔(126조원)으로 늘어나 경제회복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다. 결선투표로 가면 고노 후보와 맞붙을 것이 유력한 기시다 후미오 전 정조회장은 "기초연금보다 후생연금에 더 가입시키는 방향으로 노후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금개혁이 이번 선거의 쟁점이 된 데는 이 문제가 향후 일본사회의 가장 큰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총무성이 '경로의 날'을 맞아 발표한 고령인구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자는 346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9.1%에 달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면 2040년 전체의 35.3%에 이를 전망이다. 이 가운데 70세 이상 인구는 지난해보다 61만명 증가한 2852만명으로 전체의 22.8%를 차지한다.

일본의 공적연금제도는 20세 이상 국민 누구나 가입하는 국민연금(자영업자 및 학생 등)과 직장인 등이 가입하는 후생연금으로 구성돼 있다. 후생연금은 노사가 각각 급여의 9.15%씩 18.30%를 매달 납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직장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의 두배가 넘는다. 2019년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부부세대를 기준으로 한 후생연금의 평균 소득대체율은 61.7%로 집계됐다.(한국은 45% 수준)

후생연금이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가진 데는 2015년 30여년에 걸친 갈등 끝에 공무원연금과 통합을 이루고 보험료를 현실화한 것이 주된 이유다. 그런 후생연금도 가면 갈수록 소득대체율이 감소할 전망이다. 경제성장률과 노동참가인구 등 시나리오에 따라 다르지만, 일본정부는 최악의 경우 2050년 적립금이 고갈 위기를 맞고 소득대체율은 36~38%정도로 감소할 것이라고 추산한다.

문제는 후생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국민연금(기초연금) 대상자다. 고노 후보가 주장한 기초연금의 '최저보장연금화'도 이들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면서 나온 말이다. 현행 기초연금은 20세부터 60세까지 만 40년간 정액보험료(2021년 현재 1만6610엔)를 납부하면 65세부터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급여는 납부기간에 따라 최고 월 6만5075엔(68만3300원)을 받는다. 2019년 기준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의 36.4% 수준이다. 이러한 수준은 2046년 26.5%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경제상황과 인구추이에 따라 유동적이다.

니시자와 카즈히코 니혼총합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기초연금의 수급액 저하는 단신 고령자의 빈곤율을 높이기 때문에 보험료와 급부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면서 "최저보장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지, 만약 보험료를 소비세로 전환하면 세대별로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등을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구로 카즈마사 호세이대학 교수는 "75세 이상에 한해 기초연금을 전액 세금으로 충당하는 방식을 취하려면 소비세율을 소폭 인상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케이신문과 FNN방송이 지난 18~19일 일본 성인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새총리에 기대하는 정책과 관련 우선적인 관심사는 먹고사는 문제였다. 두 가지를 선택하도록 유도한 이번 조사에서 '코로나19 관련 대책'이라는 응답이 59.2%로 가장 높았다. 이어 △경기회복 및 고용 40.2% △연금 및 의료 27.8% △보육지원 및 교육 19.3% 등을 꼽았다. 이는 모두 미래 일본의 지속가능한 성장에서 핵심 요소다.

국민적 관심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

이른바 '아베노믹스'와 관련한 후보들의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대체로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고노, 기시다 후보는 기업의 실적이 근로자를 비롯한 가계소득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고노 후보는 "앞으로 개인에 눈을 돌려야 한다. 개인의 소득으로 시야를 옮겨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면서 "임금을 올리는 기업에 세제상 우대를 할 것"이라고 했다. 기시다 후보는 '새로운 일본형 자본주의'를 내걸고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서는 안된다. 재분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베 전 총리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 타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은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이른바 '세개의 화살'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원자력발전도 쟁점이다. 가장 선명하게 탈원전을 강조했던 고노 후보는 당내 득표전략 차원에서 안정성이 확인된 기존 원전의 재가동은 찬성하지만 신증설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핵연료 재사용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기시다 후보는 원전 재가동을 해야 한다면서도 신증설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타카이치 후보는 원전 재가동과 신증설 모두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여자 아베'로 불리는 타카이치 후보는 가장 우익적 성향을 보인다. 적의 미사일기지를 무력화하기 위한 법제도의 정비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국방비를 GDP의 2%(10조엔 규모)까지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아베 내각에서 모두 외무상을 역임한 기시다 후보와 고노 후보는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면서도 필요한 곳에 예산을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적 기지 공격에 대해서는 선택지의 하나로 보고 우선 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아사히신문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들은 새 내각이 아베 전 총리와 스가 총리의 정책을 계승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58%의 응답자가 계승에 반대했고, 28%가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자민당 지지층은 계승(44%)과 반대(43%)가 팽팽했다.

고노 앞서지만 결선투표 역전 가능성도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382명과 당원 투표를 의원 표수와 동수로 배분해 총 764표를 놓고 다툰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결선투표를 진행한다. 현재 일본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고노 후보가 당원 투표에서는 절반 가까이 가져갈 것으로 보이지만 국회의원표에서는 30%를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만약 결선투표로 가면 국회의원표는 382표가 그대로 가지만 당원표는 전국 광역단체별 1표씩 47표로 줄어든다. 당원표에서 우위인 고노 후보가 불리해지면서 의원표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본 언론은 결선투표에서 아베 전 총리와 아소 부총리 등 당내 파벌 리더들이 야합해 기시다 또는 타카이치 후보에게 표를 몰아줘 역전승을 노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만 파벌의 구심력이 약화하는 상황에서 11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민적 인기가 높은 고노 후보를 낙선시킬 경우 유권자의 역풍으로 야당에 유리한 선거구도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민심과 당심이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소장파 의원을 중심으로 당개혁을 외치는 신진그룹의 주장이다.

한편 자민당 총재선거가 국민적 관심을 끌어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후보간 인신공격이나 네거티브가 없는 점은 야당에서도 부러움을 사고 있다.

옛 민주당 출신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최근 트위터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자민당은 정으로 연결돼 세력간 격렬한 충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국민을 안심시킨다"면서 "하지만 (입헌)민주당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서로 상대방이 나쁘다고 동지관계를 허물고 내분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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