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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위장수사로 디지털(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잡는다

전문교육받은 경찰관 40명 오늘부터 투입 … 랜덤채팅방·메신저 등에서 활동

등록 : 2021-09-24 12:14:46

경찰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할 때 신분을 숨기거나 위장할 수 있게 됐다. 기본 기법으로는 수사가 어려운 랜덤채팅방·메신저 등 사이버 공간에서 범인에게 성 착취물 구매 문의를 하거나 여고생 등으로 위장해 성착취범에게 접근해 범죄 증거를 수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찰청은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24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박사방 사건'의 주범인 조주빈이 지난해 3월 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자료


개정법률 시행에 따라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라인에서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혐오감을 유발하는 대화를 지속적·반복적으로 하거나 성적 행위를 유인·권유하는 '그루밍' 행위를 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특히 개정안에는 경찰이 신분을 공개하지 않거나 위장해 수사할 수 있는 위장수사 특례가 포함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신분을 밝히지 않고 범죄자에게 접근, 범죄와 관련된 증거·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범죄 혐의점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법원 허가를 받아 청소년 등으로 신분을 위장해 수사할 수 있다. 특히 법원 허가를 받으면 신분 위장을 위해 문서·전자기록 등을 작성·변경할 수 있고, 위장된 신분을 이용해 계약·거래하거나 성 착취물을 소지·판매·광고할 수도 있다. 신분을 공개하지 않는 수사는 최대 3개월이라는 기간 제한이 있지만, 신분위장수사의 경우 최대 1년까지 3개월마다 연장이 가능하다.

경찰청은 개정 법률이 올해 3월 공포된 뒤 6개월간 여성가족부·법무부와 협의해 위장수사에 필요한 시행령을 마련했다. 시행령에는 위장 수사를 할 때 본래 범의를 가지지 않은 자에게 범의를 유발하지 않아야 하며, 피해 아동·청소년에게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특히 경찰은 함정수사 등에 대한 우려를 고려해 시행령에 신분비공개수사의 세부 방법과 승인 절차, 국가경찰위원회와 국회 보고 사항 등의 통제 방안을 포함했다.

경찰청은 시·도 경찰청에 근무 중인 수사관을 중심으로 위장수사관 40명을 선발, 전문교육을 실시했다. 이들은 전국 사이버·여청수사관과 함께 본격적으로 위장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위장수사는 박사방·n번방 등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계기로 논의가 본격화됐다. 당시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입하려던 수사관이 운영자들로부터 경찰이나 기자가 있을 수 있다며 불법 촬영물을 다른 대화방에 공유한 뒤 이를 인증해야 입장할 수 있다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범행 입증을 위해 불법을 저질러야 하는 상황이라 자칫 수사관 자신이 처벌을 받을 수 있어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피해자는 급속도로 늘었다. 다행히 수사관들이 지인의 신분증과 사진을 빌려 인증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한 뒤에야 수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민사회단체와 국회를 중심으로 위장수사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입법이 가능했다.

위장수사 도입으로 경찰은 수사 효율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상대방이 경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범행을 중단하거나 늦추는 등 범죄 예방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제도가 청소년성보호법에 규정된 것이라 성인 대상 디지털성범죄의 경우 위장수사가 불가능하다는 한계도 있다. 또 현행 주민등록법상 제약 때문에 가상 인물의 주민등록증은 발급받을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경찰은 학생증·사원증을 만들어 활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향후 수사 범위와 기법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편 경찰청은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 점검단'을 운영해 문제점·보완 사항을 점검하고 위장수사관을 늘리기로 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선제적이고 예방적인 경찰 활동의 토대가 마련됐고 이를 뒷받침할 민·형사상 면책규정이 도입됐다"며 "위장수사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가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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