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지난 7월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에서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주에도 서울의 한 모텔에서 30대 여성이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살해된 사건이 보도됐다. 폭행에서부터 살인에 이르기까지 최근 수년간 친밀한 관계에서 끊임없이 젠더폭력이 발생해 사회적 공분을 일으켜왔다.

관련 통계와 법 제도적 기반 마련돼야

친밀 관계 살인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아직 없다. 하지만 한국여성의전화의 언론보도 분석에 따르면 2020년 한해 동안 현재 또는 과거의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 위험에 처하거나, 주변인이 피해를 입은 사건은 1.3일에 1건씩 보도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된 것은 최소한의 수치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 신고를 통해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적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되는 피해여성은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90년대 이후 국제연합(UN) 세계보건기구(WHO) 등 주요 국제기구들은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성폭력(IPV)이 불평등한 성별 위계에서 발생하는 젠더 기반 폭력임을 선언했다. 이후 젠더폭력은 인권 건강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공공서비스 지출 증가와 GDP 감소 등을 초래해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핵심적 요소로서 전세계적으로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심각한 문제로 논의돼왔다.

한국에서도 90년대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특별법 등 여성폭력 관련법이 마련됐고, 최근에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현행 법률로는 아직 젠더폭력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에 미흡한 점이 많다. 특히 데이트 폭력처럼 가해자와 친밀한 관계에 있지만 혼인관계가 아닌 경우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또한 젠더폭력 근절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태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 살인범죄 피해자 중 친밀한 관계의 가해자에게 살해당한 여성피해자 규모를 파악할 공식통계도 없는 실정이다. 이것 역시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예방-처벌-보호 통합적 관점에서 대응

그렇다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젠더폭력 근절을 위한 대응은 어떤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할까?

가장 중요하게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을 부부간 연인간의 사소한 다툼이나 사생활로 여기는 인식의 근본적 전환이 요구된다. 친밀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폭력은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대범죄 가능성을 내포한 전조증상으로 주의깊게 관찰되어야 한다. 따라서 초기 단계에서부터 엄중히 개입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또한 친밀관계 폭력 대응의 목표는 인권과 평등의 관점에서 피해자 지원 및 보호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가해자와 '친밀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어려움을 고려한 지원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일반 폭행사건과 구분되는 젠더폭력 피해의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젠더폭력 대응 전략의 핵심은 폭력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는 1차 예방이라는 점에서, 성평등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함양하고, 폭력 민감성과 상호존중하는 관계역량을 키울 중장기적 교육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