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성 내일e비즈 CTO/부사장

대학졸업식 연설 가운데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것은 아마도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대학교 2005년 졸업식 연설일 것이다. 하지만 1980~1990년대에 과학과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깊은 것은 리차드 파인만의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1974년 졸업식 연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파인만은 1988년에 작고했지만 그의 저서,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쓴 책들은 지금까지도 서점의 교양과학 코너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스테디셀러들이다. 말하자면 파인만은 요즘의 과학지망생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도 일종의 셀럽이라고 할 수 있는 위대한 물리학자이자 천재들 중의 천재다.

양자역학이나 수학의 해석학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양자전자기역학(QED)' '파인만 다이어그램' '파인만 경로적분', 그리고 금융공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들어봤을 '파인만-카츠 공식'에 나오는 '파인만'이라는 이름이 바로 그다.

요즘 들어 전세계가 개발 경쟁에 뛰어든 '양자컴퓨터'와 그 핵심인 '큐비트'라는 개념도 1982년에 파인만이 최초로 제안했다.

연구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정직'

파인만은 칼텍 졸업식 연설에서 '사이비과학'과 '과학이라는 탈을 쓴 비과학적 연구방법'을 비판하기 위해 유사과학을 뜻하는 '화물숭배과학'(Cargo Cult Science)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그후 이 말은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알 만한 인기 용어가 되었다. 파인만은 각자의 연구가 화물숭배과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연구자의 자세를 강조했는데 그 핵심이 '정직'이다.

만약 연구자가 실험을 하고 있다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결과뿐 아니라 틀렸다고 생각하는 결과도 보고해야 한다. 실험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이론이 가능하다면 이것도 말해야 하며, 다른 실험에 의해서 이 실험이 반박될 수 있는 소지도 모두 밝혀야 한다. 이것은 실험을 해석할 자신의 이론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론이 설명 가능한 실험 결과는 물론 설명할 수 없는 실험 결과도 정직하게 발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파인만이 특히 강조한 것은 일반인과 정부의 자문요청에 대한 연구자의 자세다. 과학 자체는 물론 과학적 연구 결과를 오해하기 쉬운 일반인을 결코 호도해서는 안되며, 오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자문요청에 대해서는 그 연구 결과가 자문요청자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따지지 말고 오직 정직하게 발표를 해야만 한다고 진지하게 말한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려는 정부와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대립이 전세계적으로 점점 격화되고 있다.

각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백신의 안전함을 잘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강압에 의존하는 듯 보이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백신의 부작용에 따른 위험을 맹신하는 것 같다. 양쪽 모두 과학적 연구 결과에 대한 발표도 자세한 설명도 없이 점차 대립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접종 압력이 그리 세지 않고 국민들의 저항도 강하지 않지만, 백신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백신에 관한 한 전세계적으로 '화물숭배과학의 망령'이 떠돌고 있는 매우 우려스러운 시대다. 그리고 그 망령이 우리나라에 상륙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런 혼란이 오기 전에 우리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백신접종 데이터에 근거한 설명 필요

우리나라에도 백신 접종과 관련된 데이터들이 이미 상당히 쌓여 있을 것이다. 연구 분석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정부와 민간의 전문가들이 합동으로 이들 데이터를 정밀 분석해서 백신의 시간에 따른 효과 추이, 부작용 정도와 극복 방법에 대한 정직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야 한다. 지금 정도의 두루뭉술한 정부 발표로는 혹시라도 국내에 상륙할지 모를 백신 부작용 공포에 따른 거대 저항을 막기에 버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신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연구자들은 화물숭배과학을 방지하기 위한 파인만의 경고 즉 '정직'이라는 과학의 위대한 유산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지금은 이들 과학자의 일거수일투족이 인류 역사에 크고 깊게 기록될 시기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