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또 다시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4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하고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지 불과 3개월 만이다. 정부가 이처럼 다급하게 대책을 내놓은 것은 1차 대책 시행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 급증세가 지속되고 부동산시장이 여전히 과열양상을 멈추지 않아서다.

가계부채 관리강화는 환영받기 어려운 정책이다. 그런데도 이를 단행한 것은 강력하고 선제적인 대책을 시급히 내놓지 않을 경우 금융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과중한 가계부채는 자산시장에 버블을 생성시켜 실물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최대의 위험요소이다. 또한 다중 채무자와 젊은층,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은행권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상환위주 대책으로 저소득층 불만 이어져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증가속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계부채 총액은 지난 1년 사이 10.3%나 불어나 1800조원을 넘어섰다. 이로 인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016년 87.3%에서 2021년 2분기 104.2%로 16.9%p나 급격히 높아졌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 미국은 이 기간에 77.5%에서 79.2%, 영국 85.3%에서 89.4%, 일본이 57.3%에서 63.9%로 소폭 늘어나는 등 주요 선진국들은 한자릿수 증가에 그쳤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생존위기에 내몰린 상황에서 앞으로 돈 풀기 종료와 금리인상 등으로 전환기 위기가 증폭될 경우 부채 부실화가 예상된다.

이번 대책은 대출기준을 담보 위주에서 상환능력 중심으로 전환시키고 돈을 빌린 뒤 나누어 갚는 분할상환을 적극 유도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대출기준이 상환 능력 중심으로 전환되면 아무리 좋은 담보 물건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대출자의 소득이 적으면 대출가능 금액이 이전보다 훨씬 줄어든다.

정부는 내년 7월부터 적용할 예정이었던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 시행 시기를 반년 앞당기는 한편 영세 자영업자와 중·저신용자의 '급전' 조달 통로로 활용되어온 카드론도 DSR에 반영하기로 했다. 고금리의 카드론은 원리금 상환이 쉽지 않아 자칫 빚 수렁에 빠지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코로나19로 인한 생계자금 수요 확대 등으로 다중채무자의 카드론만 25조원에 달하는 등 증가속도가 무척 가파르다. 또한 분할상환은 가계부채 증가율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하는 제도로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들이 거의 모든 가계대출에 기본으로 적용하고 있다.

가계부채 관리대책이 상환능력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MZ세대(1980년 이후 출생)나 저소득층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나 게시판에는 '상환능력 위주 대출'이 '사다리 걷어차기' '영끌 금지법'이라는 등 비판과 불만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번 DSR 규제강화로 소득이 낮은 청년과 서민층의 내집 마련하기가 한층 어렵게 됐다. 이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이어져 필연적으로 양극화를 더욱 조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카드론 규제로 서민들의 급전 융통이 어려워져 대부업이나 사채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이번 대책으로 주택 매매수요 일부가 임대차로 옮겨가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전세난이 더욱 심화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앞으로 금융권의 대출한도 축소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내달 기준금리가 추가 인상되면 부동산 매입심리가 더욱 얼어붙어 주택 거래량이 줄어들고 가격 상승폭이 둔화되는 지금의 장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예외조치로 부동산대책처럼 악순환될까 우려

물론 정부가 대출규제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 금융불균형이 위험수위를 넘어선 지 꽤 오래됐기 때문이다. 진작에 손을 썼더라면 차근차근 순차적 순리적으로 사태를 수습해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집값과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뒤 돈줄을 차단하니 적잖은 부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최근 부동산을 잡겠다고 가계대출을 옥죄다가 무주택 실수요자 피해가 속출하면서 여론이 들끓자 전세대출을 가계대출 총량에서 제외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내년 DSR 대상에서도 전세대출 등을 제외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같은 예외조치로 자칫 이번 대책의 실효성이 낮아지면서 부동산 대책처럼 규제가 규제를 부르는 악순환이 전개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