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영장 곳곳에 등장 … 물증 확보 못한 듯

손준성 검사 기본권 침해 논란 자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관련 사건 핵심 관계자들을 조사하지 못하면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발장 작성 지시자나 작성자를 특정하지 못해 핵심 관계자인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 곳곳에 '성명불상'으로 표기해 의혹을 뒷받침할만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손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이 기각된 뒤 곧바로 구속영장까지 기각되면서 무리한 영장 청구로 기본권 침해 논란을 자초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근하는 김진욱 공수처장│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출근하고 있다. 과천=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수사 부실, 물증 확보 안돼 =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의 흐름을 뒷받침할 추가적인 물증을 아직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손준성과 성명불상의 상급 검찰 간부들이 성명불상의 검찰공무원에게 고발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도록 하고 고발장을 작성하도록 했다"고 영장에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부하 검사들을 압수수색하고 조사까지 벌였지만, 상부의 지시를 통해 고발장 등 자료 작성에 가담했다는 진술까지는 확보하지 못했기에 '성명불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손 검사의 혐의 중 하나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직무상 의무 없는 일을 시켜야 성립하는데, 범죄사실을 기술하면서도 손 검사 외에는 고발장 작성을 지시하거나 실행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추가로 특정하지 못한 셈이다.

손 검사 부하 검사들이 판결문을 검색한 사실만으로 곧장 고발장 작성에 가담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당시는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으로 이슈화한 검찰 조직의 중립성 문제가 큰 현안이었기 때문에 대검 내 참모조직인 수사정보정책관실이 현안 파악 등 다른 통상적 이유로 판결문을 검색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텔레그램에 남아 있는 '손준성 보냄'이라는 문구 외에는 손 검사가 김 웅 의원에게 자료를 직접 보냈다는 추가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영장청구서에는 손 검사와 함께 입건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름이 여러차례 나오지만, 정작 범죄 혐의와 관련한 내용에는 윤 전 총장의 이름을 적시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청구서 내용과 관련 공수처는 27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금일(27일) jtbc의 영장청구서 내용에 관한 보도는 수사와 직접 관련된 내용으로 확인해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방어권 침해, 무리한 영장 청구 논란 = 게다가 손 검사 측이 구속영장 청구 사실을 뒤늦게 알렸다며 "방어권 침해"라고 반발하는 등 절차적 측면에서도 구설에 올랐다

공수처가 변호인보다도 먼저 기자들에게 영장 청구 사실을 알린 것이다. 손 검사 측 변호인은 "26일 한 공수처 검사가 손 검사에 대한 구인장을 집행하면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바로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팀의 방침이라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수처는 "'상부 지침으로 늦게 통보했다'라거나 '미안하다'와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공수처는 '늑장 통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상적으로 피의자 조사가 이뤄졌다면 영장 청구시 통보를 했겠지만, 손 검사의 경우는 출석 불응에 대응해 출석을 담보하려는 조치였다는 설명이다. 특히 법원에 구인장을 발부하자마자 즉시 통보조치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공수처는 기자들에게는 26일 오후 2시 1분 영장 청구 사실을 먼저 알렸고, 변호인에게는 오후 2시 3분 전화로 이같은 사실을 통보했다. 아무리 피의자라도 방어권 보장을 위한 적절한 기회와 시간을 보장하지 않고 영장을 거듭 청구해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공수처가 '공식 1호 영장'을 청구하면서 드러난 각종 절차는 '무리수'였다는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공수처는 지난 20일 소환 불응 등 수사 비협조를 이유로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자 사흘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심지어 손 검사에 대한 소환 조사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다. 공수처가 출범 이후 검찰과 다른 길을 가겠다며 인권친화적인 수사기관을 표명했던 모습과는 딴 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27일 국정감사에서 "체포영장이 기각되고 곧바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라는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의 질문에 "별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법조인으로서 찬성할 만한, 적절하게 진행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공수처는 증거를 보강해 수사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이를 위해 손 검사와 김 의원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지만, 보강 수사가 충분히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환 조사 일정이 다소 늦춰질 수 있다는 얘기다.

김선일 기자 · 연합뉴스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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