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등록 전기차 20만대 넘었는데 질식소화포·소화수조 턱없이 적어

소방관 내전복도 필수 아닌 '선택'

전기자동차 수요가 늘면서 화재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화재진압과 구조에 필요한 장비는 턱없이 부족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소방청 등에 따르면 국내 등록 전기자동차가 20만대를 넘어섰다. 수소차도 2만대 가까이 된다. 하이브리드자동차는 이보다 훨씬 많다. 친환경차량이 많아지면서 화재사고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전기차 화재는 초기에는 일반 차량과 마찬가지로 물로 진화한다. 하지만 이후에는 질식소화포를 2시간 이상 덮어야 온도가 떨어진다. 질식소화포는 배터리 온도를 낮추기 위한 필수 장비다. 차량을 통째로 담가 진화하는 소화수조도 필요하다. 고전원 배터리의 폭발 위험이 있어서다. 차종에 따라 120~1500V 전압이 흐를 수 있어 감전에도 주의해야 한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전국 소방서·구조대는 아직 화재진압·구조 장비 구비에 소극적이다.

현재 전국 소방서·구조대가 보유한 질식소화포는 171점 뿐이다. 보유하지 않은 구조대가 꽤 있다는 얘기다. 실제 서울시의 경우 24개 소방서 중 6곳만 보유하고 있다. 대구도 8곳 중 4곳, 경남은 18곳 중 8곳이 보유하고 있다. 경기도는 35개 소방서 중 2곳, 충북은 12개 소방서 중 1곳만 질식소화포를 보유하고 있다. 질식소화포 숫자가 소방서 숫자와 비교해 같거나 많은 곳은 부산(11곳, 21점) 인천(10곳, 19점) 광주(5곳, 6점) 대전(5곳, 5점) 울산(6곳, 12점) 세종(2곳, 7점) 전남(18곳, 42점) 7곳이다. 특히 전기차가 상대적으로 많은 경기·서울·제주의 질식소화포 보유 숫자가 적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소화수조는 전국에 딱 2개 뿐이다. 모두 경기도에 있다. 경기소방재난본부 소속 화성소방서(재난대응과, 2019년)와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소속 일산소방서(119구조대, 2021년)가 1대씩 보유 중이다. 아직까지 사용한 적은 없다.

차 밑으로 물을 뿜는 수 벽관창도 꼭 필요한 장비지만 보유한 구조대가 많지 않다. 전기차는 대부분 차량 아래에 배터리가 달려있어 불을 끄기 위해서는 차량 밑으로 관창을 넣어 불을 꺼야 한다.

소방관·구조대의 감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구조장비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소방청이 보유한 전기차 구조장비는 모두 4종 4416점이다. 절연장갑 982점, 절연화 1269점, 절연공구세트 629점, 측정장비 1536점 등이다. 전국 소방서가 226개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광주시 소방본부 관계자는 "현재 확보된 내전복 세트가 없어 절연이 안되는 방화복을 입고 화재 진화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구조장비 보유가 저조한 것은 아직까지는 화재 사고가 많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최근 3년(2017년 1월 ~ 2021년 8월)간 발생한 차량화재 2만2411건 가운데 전기차 화재는 26건(0.12%)이다. 이 때문에 소방청도 전기차 구조장비를 기본장비가 아닌 선택장비로 규정하고 있다. 보유 기준도 낮다. 절연장갑·절연화는 구조대별 2점씩, 절연공구세트·측정기는 구조대별 1점씩이 최소 기준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보유하지 않은 구조대가 상당수다. 기본장비는 소방기관에서 보유해야 하는 기본 장비이고, 선택장비는 소방기관이 재난환경의 특성을 고려해 보유할 수 있는 장비다.

소방청도 전문 화재진압·구조장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확보 속도는 더디다. 소방청은 우선 내년 초 전기차 구조장비를 선택장비에서 기본장비로 기준을 바꾸기로 했다. 절연공구세트·측정기는 구조대별 보유량을 1점에서 2점으로 늘린다. 이를 위해 조만간 '소방장비 분류 등에 관한 규정'(훈령)을 개정할 계획이다. 장비 확충을 위해서는 시·도 소방본부가 각각 구매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시·도에 구매를 독려하는 한편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절연장갑·절연화 등 4종의 구조장비 1세트 가격은 235만원이다. 구조대별로 4종의 구조장비를 각각 2세트씩 확보하려면 모두 10억6000만원이 필요하다.

한편 국내 전기자동차가 20만대를 넘어섰다. 소방청에 따르면 9월말 기준 국내 등록 전기차는 모두 20만1520대다. 경기도가 3만5385대로 가장 많고, 서울시가 3만3434대로 뒤를 잇고 있다. 제주도도 등록 전기차가 2만3845대다. 전기차가 가장 적은 세종시도 1627대가 등록돼 있다. 이 숫자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등록 전기차는 21만1677대다. 소방청 통계와 비교하면 지난 10월 한달에만 1만157대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수소전기차는 10월 말 기준 1만9068대다.

김신일 · 방국진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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