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린어페어스 '미국의 과도한 군사주의' vs '중국의 적대적인 외교정책'

아시아 주요국의 군비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대해 미국의 과도한 군사주의가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과 중국의 호전적이고 적대적인 정책 때문이라는 분석이 맞서고 있다.
지난 10월 초 미 해군의 고속 공격형 핵잠수함인 '코네티컷'(SSN-22) 호가 남중국해 인근 수중에서 충돌사고를 당했다. 미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부 소속의 이 잠수함은 당시 공해상에서 항공모함 3척을 호위하면서 영국과 일본, 호주, 캐나다, 네덜란드 해군과 훈련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AP=연합뉴스


먼저 포문을 연 건 캐나다 아시아태평양재단 선임연구원이자 뉴질랜드 빅토리아대 교수인 밴 잭슨. 잭슨 연구원은 지난 10월 말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미국은 아시아를 화약고로 바꾸고 있다 - 무력 우선 접근법의 위험성'에서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 과도한 군사주의로 흐르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아시아에 병력과 군사장비를 늘리고 아시아 각국에 미국산 무기 구매를 늘리도록 자극하면서 이 지역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피할 수 있는 무력충돌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일본정부를 움직여 초음속 무기 개발과 대함 순항미사일 사거리 확대 등에 나서도록 했다. 또 필리핀에 26억달러어치 신형 무기 세일즈에 나섰다. 필리핀은 2016년 24억달러의 미국 무기를 구매한 바 있다. 또 호주에 순항미사일 기술을 이전키로 했고 '오커스'(AUKUS)로 불리는 미-영-호주 3국 국방기술 협약의 일부로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인수를 지지하기로 했다.

오세아니아 지역 전반에 미군의 행동반경을 넓히는 작업도 추진중이다. 미크로네시아 연방공화국과 파푸아뉴기니에 새로운 미군기지를 건설하고 괌에는 군사장비를 증강하고, 팔라우엔 새로운 레이더 시스템을 구축키로 했다. 한편 올해 5월엔 한국이 자체적으로 생산한 미사일에 대해 사거리와 탄두 중량 제한을 해제했다.

잭슨 연구원은 "미국의 아시아 접근법은 오래 전부터 군사력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방식이었다"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시아로의 회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자유롭게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모두가 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발판이었다는 것. 이는 날로 상승하는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미국 패권의 핵심 위협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미국의 군사적 우위력을 지키기 위해 전통적인 군사주의를 우선하고 있다.

중국은 핵무기를 늘리는 확장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행정부의 대응은 전임 트럼프행정부와 궤를 같이한다. 트럼프 재임 기간 미 국방부는 '중국의 전통적 핵전략은 억지력 차원이었지만, 앞으론 달라질 것'이라는 입장을 여러차례 내비쳤다. 이에 따라 트럼프행정부는 30년 앞을 상정한 '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입안했다. 총 예산 1조2000억~1조7000억달러를 들여 중국과의 핵능력 격차를 더욱 늘리겠다는 것.

바이든행정부도 이 계획을 지지하고 있다. 잠수함 발사 순항 핵미사일과 '트라이던트 D5'로 불리는 저위력 전술핵폭탄에 거액을 투자할 방침이다. 또 동북아시아에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추가하고 현재 운용중인 B2 폭격기의 6배 이상 많은 145대의 B21 스텔스 폭격기를 제조할 계획이다.

바이든행정부는 오바마 시절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심' 전략을 반복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증강전략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엔 전술핵무기와 미사일 방어를 피할 수 있는 초음속 활공비상체, 열차에서 발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등을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잭슨 연구원은 "중국과 북한 모두 핵무기, 미사일 능력을 자유롭게 발전시키고 있다. 당연히 미국은 이에 대응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미국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곧 미 국방부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더 많은 병력과 군사장비를 동원하면서, 동맹국에 군비경쟁을 촉발시키면서 초래하는 상황은 아시아를 화약고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에 대한 합리적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최근 중국의 핵증강 노력은 불필요한 데다 억제되지도 않은 트럼프행정부의 핵정책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3750기의 핵탄두를 갖고 있는 반면, 중국의 핵탄두는 최대치로 계산해도 350개에 불과하다는 것.

잭슨 연구원은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중국의 핵무기 확대전략은 미국을 따라잡고 방어적으로 대항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돼야 한다"며 "중국은 청천병력과 같은 기습공격을 감행하려는 게 아니다. 막대한 격차를 인정하는 중국은 합리적이고 예측가능하게 움직인다. 그에 반해 큰 격차로 앞선 미국은 오히려 덜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중국과 벌이는 군비경쟁은 위험하고 자기파괴적일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이 지원하는 호주의 핵잠수함 함대를, 자국의 상선항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기 쉽다. 일본의 장거리 순항미사일, 사거리와 탄두중량이 늘어난 한국의 탄도미사일을 중국 지도부를 타격할 도구로 인식할 수 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미국의 탄도미사일 방어시스템이 중국의 왜소한 반격능력마저 중화시킬 의도라고 의심하고 있다. 최근 미 국방부는 "전함에서 발사하는 방공 미사일을 방어용에서 공격용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의 두려움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잭슨 연구원은 "미국의 과도한 군사주의는 전쟁의 위험과 군비경쟁을 고조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의 가능성을 위협한다"며 "아시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임은 육해공군이 아니라 개발과 무역, 투자다. 하지만 미국은 아시아의 경제적 필요를 무시했다. 그 자리를 꿰찬 게 중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아시아의 미래를, 나아가 자신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 안보는 미사일과 잠수함으로만 확보되는 게 아니다. 폭력의 원천에 대처하기 위해선 상호 경제적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 바이든행정부가 방침을 바꾸지 않는다면, 향후 아시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비극의 책임은 미국에 지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신미국안보센터 선임연구원 토머스 슈가트는 이달 초 포린어페어스 기고 '중국의 적대감이 충돌의 원인'을 통해 잭슨 연구원의 논지를 반박했다.

그는 "중국의 대대적인 군사력 증강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중국은 지난 수년 동안 수백기의 정밀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했고 아시아에 미국 기지와 군함을 모방해 배치했다. 중국은 전함 수에서 세계 최대 해군을 구축했다. 중국은 군사력을 키우면서 점차 이웃국가들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며 주기적으로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잭슨 연구원이 잘못된, 부정확한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먼저 '미국이 아시아에서 병력과 장비를 급격히 늘리고 있다'는 데 대해 "미 국방부 병력배치 기록에 따르면 올 여름 기준 대략 8만9000명의 미군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됐다. 10년 전엔 약 8만4000명이었다. 5000명 증강은 미군 전체의 0.5%에도 못 미친다. 이를 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병력배치 급증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바이든행정부가 중국과의 군비경쟁을 고조시키는 국방 이니셔티브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도 슈가트 연구원은 "일본의 초음속 무기 개발과 대함 미사일 사거리 확대는 2020년 상반기 이뤄진 것으로, 바이든행정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미 해병대원 5000명을 일본 오키나와에서 괌으로 옮기겠다는 조치는 2006년부터 계획됐고, 파푸아뉴기니의 새로운 군사기지는 기존 시설의 업그레이드로 2018년 발표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팔라우의 새로운 레이더 구축은 중국으로부터 1500마일 이상 떨어진 곳으로, 2017년 발표된 계획이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 위협에 대응한 미국의 국방정책들을 오로지 바이든행정부 탓으로 돌릴 순 없다. 미국의 국방정책은 여러 행정부를 거쳐 진행되고 있으며 미 정치권의 초당파적인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다. 미중 군사적 균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명확한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반박했다.

한편 '중국의 핵확산 전략은 방어적'이라는 잭슨 연구원의 주장에 대해 슈가트 연구원은 "중국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를 능가하려고 한다. 2018년 발표된 트럼프행정부의 핵태세 검토보고서에 앞선 2017년, 중국 지도부는 '21세기 중반까지 세계적 수준의 군사력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중국의 핵증강 노력은 트럼프 또는 바이든행정부의 전략과 무관하게 이뤄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과 비군사적인 분야에서 더욱 협력하고 경쟁해야 한다는 잭슨 연구원의 지적은 타당하다"면서도 "미국이 새로운 무기 판매와 군사적 존재감 확대에만 열을 올린다는 지적은 중국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중국이 제기하는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에 따른 대응법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미중 충돌의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군사적 힘의 균형추가 자신의 쪽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한다면, 군사력에 의지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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