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20세기 동안 사람들은 '석유'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리튬'은 잘 몰랐다. 이제 달라졌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은 '리튬'이란 말을 일상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휘발유 연료통 대신 '리튬 배터리'를 장착하고 달리는 전기차가 대세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자동차산업에서 석유가 필수였다면 21세기에는 리튬이 필수소재가 될 것이다. 이게 다 기후위기가 일으킨 변화다. 리튬은 은백색의 아주 가벼운 금속으로 처음엔 전자제품 배터리 소재로 쓰이다가, 21세기 들어 전기차 배터리 소재로 각광받았다. 작년 한해 동안 리튬 가격은 50%가 뛰었다. 2024년 수요가 현재의 2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으니 공급이 여의치 않으면 가격은 더 뛸 것이다.

리튬은 철광이나 석탄처럼 흔한 광물이 아니다. 리튬광산을 가졌거나 매장량이 풍부한 나라는 몸값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지질조사연구소 통계에 의하면 남미의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가 리튬 매장량 1, 2, 3위다. 이 세 나라를 일컬어 '리튬 삼각지대'라고 부른다.

이들 세 나라 중에 칠레가 초미의 관심사다. 그 이유는 이 나라의 정치적 변화가 장차 리튬자원과 엉켜서 세계 배터리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환경헌법' 제정할 전망

작년 칠레에는 두가지 큰 정치적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5월 제헌의회 의원선거로 155명의 제헌의회가 구성된 사건이다. 또 하나는 연말에 실시된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35세의 젊은 좌파 운동가 가브리엘 보리치가 당선된 일이다. 두 사건 모두 지난 35년간 칠레 정치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이 분출한 결과다. 소요사태가 끊이지 않는 등 혼란 상태가 계속되다가 다행히 민주적으로 수습된 것이 제헌의회 선거였다. 제헌의회는 올해 안에 새 헌법안을 만들어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따라서 단순한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국가체제를 바꾸는 제도의 혁신이 예상된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대목이 기후변화 위기를 비롯한 환경 문제가 개헌안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제헌의회는 기후변화 자원 물 문제를 헌법으로 규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헌법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되면 아무 나라도 해보지 않은 일종의 '환경헌법'을 실험하게 된다.

리튬광산 개발문제가 핵심적 사안이다. 칠레는 세계 제3의 리튬광 보유국이며 제2위 생산국이다. 또 과거 피노체트 독재정권 때 설립된 민간기업 SQM이 세계리튬 물량의 1/5을 공급한다. 보리치 대통령 당선자는 내년 3월 취임하면 리튬자원 개발을 전담할 국영회사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칠레 리튬자원의 특징은 땅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타카마 사막의 염호(鹽湖)에 있다는 점이다. 남한 땅만큼 넓은 이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비가 적게 오는 곳으로 물 문제가 심각하다. 이 소금물을 증발시켜 리튬을 걸러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사막을 더 건조하게 해 기후변화를 악화시키고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 제헌의회 의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칠레 원주민인 마푼테 족은 그들의 땅이 외지 자본에 의해 개발되는 것을 싫어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한다.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리튬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지만, 리튬 채취 과정이 기후와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냐는 역설적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칠레는 남아메리카 국가 치고는 비교적 부유한 나라다. 수요가 폭발하는 리튬자원을 소금호수에 묻힌 채 두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원개발과 생태계 훼손에 대한 태도가 신자유주의 체제 때와는 확연히 다를 전망이다. 특히 리튬광산이 국영기업에 의해 독점적으로 운영되고 공급이 제한된다면 세계 배터리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칠레의 리튬 개발 정책은 이웃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칠레의 정치변화에 눈길이 가는 이유

현재 리튬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중국제조2025' 계획을 세우고 2015년부터 전기차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배터리 소재 확보에 일찍 나섰다. 배터리 기업 CATL은 주가총액이 GM과 포드를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로 세계 배터리 공급을 주도하는 거대기업이 되었다. 중국은 호주 칠레에 이어 세계 3위 리튬생산국이지만 배터리시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호주의 리튬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다.

한국도 전기차 배터리 제조 분야에서 강국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CATL에 이어 세계 제2의 배터리 제조 기업이다. 일본은 배터리산업에 오랜 전통을 갖고 있고,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후 배터리 공급망 확보에 전략적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 그 나라의 정치적 변화는 단순한 해외토픽 거리가 아니다. '21세기 석유'로 불리는 리튬자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