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민 (주)이젠파트너스 대표이사, 공학박사

1997년 8월 개봉한 영화 '넘버3'에서 한석규는 건달조직에서 넘버1의 총애를 받고자 충성 경쟁하는 넘버3 태주로 등장한다. "에이 씨. 어떤 새끼가 넘버쓰리래? 내가 넘버투야!" 태주가 울부짖었던 대사다. 당시 인기배우 한석규가 주인공으로 출연해 주목받았던 영화였으나 기대만큼 흥행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씬스틸러로 등장한 송강호 연기가 이후에 오랫동안 영화팬들에게 각인되었다. 몇분 안되는 장면에서 송강호는 '불사파'라는 삼류 양아치조직의 우두머리로 나와 "무대뽀" "헝그리정신"을 떠벌리며 부하들을 교육시키는 장면으로 이 캐릭터를 부각시켰다.

당시 영화 포스터에는 주인공 한석규가 크게 나왔으나 이후 이 영화를 언급할 때는 송강호의 연기가 주로 거론됐다. 어떤 영화 소개 사이트에서는 출연자 중 송강호를 제일 앞에 소개하고 나머지 출연자 이름을 병기하는 곳도 있다.

송강호는 이전에도 한석규 주연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서 단역 수준의 조연으로 등장해 리얼한 양아치 연기로 눈길을 끈 바 있다. 이후 송강호는 대한민국의 대표 배우로 성장해 아카데미 작품상 '기생충'에 출연했고, LA 비평가협회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97년 8월에 송강호를 눈여겨본 사람이 몇명이나 있었을까? 영화 '넘버3'는 송강호 시대의 개막이었다.

영국·EU에선 가스발전이 넘버1 역할

천연가스는 에너지계의 '넘버3' 같은 존재였다. 석탄의 시대, 석유의 시대를 거치면서 천연가스는 보조 에너지원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천연가스는 비료의 원료를 제공하고 주택의 난방에서 깨끗한 에너지 연료로 사용된다.

재생에너지가 친환경 에너지 공급원의 주인공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천연가스는 이 주인공의 부족한 부문인 공급의 간헐성 등을 채워줄 조연으로 캐스팅되었다. 그러나 석탄발전소 폐쇄, 원자력발전 건설지연 등으로 이 가스발전은 오히려 주 발전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예를 들면 2022년 1월 15일 오후 1시(런던시각 현재) 현재 영국의 가스발전은 전체 발전의 52%를 담당한다.(영국 National Grid 실시간 발전 현황, https://grid.iamkate.com) 영국은 유럽에서도 풍력 자원이 가장 풍부한 지역으로 해상과 육상 풍력발전소 설치 용량이 가장 큰 국가 중 하나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천연가스연료 전력발전 비율은 1990년대 10%대에서 2020년 29.5%로 성장했다. 석탄발전을 대체할 재생에너지 발전에 투자가 진행된 후 실제 발전비율에서 넘버3로 인식되었던 가스발전이 영국에서 넘버1이 되었고 OECD국가 평균으로도 넘버1이 된 셈이다.

2021년 12월 21일 유럽에서의 천연가스가격이 정확히 1년 전 대비 10배로 치솟았다. 이 사건은 천연가스가 이 시대 에너지의 주역이 되었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리는 선포와 같다. 지난해 여름 바람이 적게 불면서 풍력발전량이 줄었고 이를 보조한 가스발전 운전량이 늘어 가스 비축량이 감소하면서 겨울철 수요 피크시즌을 맞아 가스가격이 역사상 최고치에 올랐던 것이다.

가스가격 폭등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반대하는 러시아의 정치적 압력 수단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그 여파는 한국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바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인수합병을 유럽이 반대한 것이다. 가스수급 위기를 겪고 있는 EU가 LNG선의 독점화로 인해 운반상의 가격상승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석유의 수요공급 문제가 세계 정치경제에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이젠 가스가 그 위치에 오게 된 것이다.

어떤 대선후보도 관심 안갖는 가스에너지

한국이 향후 탄소중립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친환경 에너지 전환의 뒷심은 천연가스를 어떻게 확보하고 초과수요를 관리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미래의 에너지 주인공이 재생에너지이냐 원전이냐라는 뜬구름 논쟁에 힘을 낭비하고 있을 뿐 현재까지 어떤 대통령 후보도 에너지 안보 민생 경제 정책에서 천연가스 수급 전략을 제시한 이는 없다.

본 칼럼에서는 한국이 가스를 에너지 자원의 넘버원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정과 잠재적 리스크를 살펴보고 이에 대비할 방안에 대해서 시리즈로 계속 정리해보고자 한다.

김재민 (주)이젠파트너스 대표이사,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