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다. 신문 방송 등 매체마다 호랑이에 얽힌 설화와 사연을 쏟아내며, 개인 단체 국가의 올해 운세를 점친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디지털 시대인데도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 문화는 우리 삶 속에 아직 깊이 살아 있다. 대통령 선거의 해라서 그런지 호랑이가 리더십의 상징으로 자주 인용된다.

대통령 선거일이 임박하면서 여야 주요 후보간 네거티브 공방전이 치열하고 혼탁하다. 그보다 우려되는 것은 후보들이 날마다 무서울 정도로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사실이다.

재원 고려하지 않고 돈으로 표 사려는 대선판

남발되는 공약을 들으면서 호랑이 이야기 두가지가 강하게 뇌리를 스친다. 너무나 잘 알려진 얘기들이지만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그 하나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고전 예기(禮記)에 실린 공자 이야기다. 공자가 태산을 지나가는데 어떤 부인이 무덤 앞에서 슬피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공자가 제자 자로에게 그 사연을 알아보라고 일렀다. 자로가 부인에게 "무슨 걱정거리가 있길래 그리 울고 있소?" 하고 물었다. 부인은 "제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고 이어 남편과 아들도 그렇게 죽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이에 공자가 말했다. "그러면 왜 이 지역을 떠나지 않소?" 이에 부인이 대답했다.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훈계했다. "모두 알아 두거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는 것을."

이 에피소드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구절로 2500년 동안 인구에 회자되는 정치격언으로 자리잡았다. 가혹한 정치란 권력을 가진 자들이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리고 가벼운 허물에도 중벌을 내리는 통치행태를 빗댄 표현이다.

또 하나는 우리 전래 동화인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다. 눈이 내리는 겨울 밤 배가 고픈 호랑이가 소를 잡아먹으려고 마을로 내려왔다. 어느 집 외양간으로 들어갔는데 집안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아이를 달래려고 "자꾸 울면 호랑이가 나와서 물어간다"고 겁을 줬다. 그런데도 아이가 계속 울자 엄마가 "곶감을 하나 줄 테니 이제 울지 말거라"하고 말하자 아이는 울음을 뚝 그쳤다. "곶감이 얼마나 무서우면 아기 울음도 그치게 할까." 호랑이는 자신보다 더 무서운 곶감이 그 집에 있다는 것이 겁났다. 그때 소도둑이 깜깜한 외양간에 들어와서 소인줄 알고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호랑이는 자기 등에 올라탄 게 곶감인줄 알고 줄행랑을 쳤다.

호랑이에 얽힌 두 이야기는 상관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선거에 대입해서 생각하면 일맥상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후보들은 표가 있는 곳이면 그들의 표심을 사려고 재원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곶감을 빼주듯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탈모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공약이 호응을 얻자 신이 나는 듯 혜택을 확대할 뜻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에 질세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병사 월급을 200만원으로 올려주겠다고 공약했다가 재원조달과 부사관 봉급에 대해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한국이 부자 나라로 인정받는 처지가 되긴 했지만 '포퓰리즘 공약의 완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포퓰리즘 공약을 선도한 것은 민주당 이 후보가 아닌가 생각한다. 경기도지사 시절 그는 앞장서서 청년수당을 지급하고 보편적 기본소득 개념에 입각해 중앙정부가 주지 않은 20% 상위계층 경기도 주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제공했다. 민주당 후보라는 점에서 일응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이제 새해가 시작된 지 보름밖에 안됐는데 추경예산을 처리하자고 다그치는 것을 보며 정치적 절제를 넘어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포퓰리즘 정치의 종착역은 세금과 인플레

정치에서 곶감이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것은 전래동화의 해학을 넘어서는 현실적 문제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는 물론 몇년 전 그리스에서 드러난 포퓰리즘 선례가 그 반증이다. 공약이행을 위해 권력이 쓰는 돈은 일종의 가불이다. 누군가 국가 금고를 채워놓아야 한다. 세금을 무리하게 거둬들이거나 적자재정을 편성해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풀어놓는 두가지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포퓰리즘 정치의 종착역은 결국 세금과 인플레라는 두마리 호랑이를 불러들이지 않을까 염려된다. 가혹한 세금과 인플레는 국민을 더욱 괴롭게 만들 것이다.

김수종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