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 재해가 발생했을 때 개인 사업주는 물론이고 단체장과 공기업 사장까지 형사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산업안전보건법 같은 기존 법률들이 주로 법인이나 단체에 형사적인 책임을 묻도록 했다면 이 법은 사용자나 최고경영자, 지방자치단체장까지 직접 처벌하도록 했다는 게 특징이다.

산업재해는 물론이고 지자체가 관리하는 터널이나 교량 붕괴, 도서관이나 미술관 화재, 지자체 산하 사업소들의 먹거리 안전사고와 농기계 임대사업과 관련된 안전사고 등 시민재해가 모두 포함된다.

최근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와 포스코 포항제철소 하청업체 노동자 사망사고가 보여주듯 우리의 산업현장은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21년째 최상위권이다. 안전난간 미설치 등 유해·위험 사항과 2인 1조 근무 같은 기본적인 안전수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지만 산재공화국이라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법 실행으로 산재공화국 오명 지울 수 있을까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취지는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법인뿐 아니라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하도록 함으로써 기업 스스로 획기적인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구축, 중대 재해를 예방하도록 적극 유도하자는 것이다.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겠다. 하지만 문제는 이 법을 완벽히 준수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법 규정을 곧이곧대로 지키기엔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외주'다. 시공사가 공사를 진행하면서 각종 작업에 대해 하청·재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공사비용의 무리한 삭감이 발생한다. 하청이 내려올 때마다 수수료를 떼면서 공사 단가가 낮아지니 현실적으로 규정을 지키지 못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전과 보건에 대한 예방활동을 철저히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데 실정이 이러하니 원청기업이 하도급을 주는 과정에서 이해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

'중대 시민재해'도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안전관리 의무를 진 지방자치단체는 243곳, 지방공공기관은 460개에 이른다. 적용 범위도 원료나 제조물, 공중이용시설이나 공중교통수단 결함 등 산업재해 이상으로 폭이 넓다. 철도 탈선, 침수·감전 사고는 물론이고, 빙판길 미끄러짐 사고에도 지자체장이 형사처벌될 수 있다. 중대 시민재해 유형은 족히 수백가지는 될 것이다. 하지만 예방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을 정도로 법 규정이 불명확하다. 적용 범위도 시외버스 사고엔 포함되나 광역·시내버스는 제외되는 등 중구난방이다.

물론 중대재해법이 시공업계의 생태계를 바꿀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현장 관리가 안되는 많은 업체를 소유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으며, 앞으로 경영 리스크가 매우 높아져 불법 하도급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 기인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벌써부터 '면피' 움직임이 포착된다. 사업주 처벌 강화에 방점을 찍다보니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건설현장에선 책임회피를 위한 편법 등 빠져나갈 구멍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다고 한다. 공공기관장들도 도급·용역을 줄 때 해당 사업장에 최대한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문제 발생시 사업주를 강하게 처벌해 산업현장의 안전을 향상시키겠다는 이 법이 오히려 안전의 사각지대를 만들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건강한 일터 만들기 위해 사회 전체가 노력을

제아무리 운전자가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운전의 달인이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있는 곳에서는 교통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산업현장의 사업주가 아무리 의무사항 준수 노력을 다한다 해도 근로자의 부주의 등과 같은 불가피한 사고는 막을 길이 없다. 하지만 이 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이상, 모든 근로자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에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선진 근로현장이 만들어져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법이 실현가능한 법이 되도록 시행과정에서 정교하게 보완돼야 한다. 처벌을 강화했다고 중대재해가 저절로 예방되는 것이 아니다. 지킬 수 없는 법은 법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기업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적극 대처해 나가야 하겠지만 정부와 지자체 국회 노동자 등 사회 전체가 함께 힘을 모아야 가능하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